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이 다국적 기업 이익 재분배와 최저 법인세 도입을 내용으로 한 글로벌 법인세 개편에 합의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애초 논의 발단은 온라인 기업의 국경을 초월한 영업 활동에 대해 과세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법인세는 고정 사업장이 있는 나라에서 부과한다. 그런데 구글 같은 인터넷 기업은 실제 매출이 일어나는 곳이 아니라 세율이 낮은 국가에 서버를 두고 영업을 해 돈벌이 터전을 제공한 나라가 세금을 부과하기 어려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 국가들 중심으로 디지털세 또는 구글세라고 불리는 세금을 매기기 시작했고 한국 국세청도 구글에 추징금을 부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이와 관련한 국제 협약을 논의해왔는데 디지털세를 반대하던 미국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후 급진전을 이뤘다. 국내 인프라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해 증세를 계획한 바이든 정부는 다른 나라 법인세도 압박하기 위해 법인세 최저 한도 설정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구글·애플 등 인터넷 기업이 표적이던 과세 대상도 금융과 채광을 제외한 다국적 기업 전체로 확대했다.
합의안에 따르면 매출 27조 원 이상 기업이 최초 적용 대상이며 이익에 대해 매출 국가에도 세금을 내야 한다. 정부는 세계 전체에서 100개 정도 기업이 대상이고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 등 한두 개가 해당한다고 했다. 영향이 크지 않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한국 법인세 총액의 10% 이상을 내고 있으며 2위에서 10위 기업까지의 세금을 다 합친 규모보다 많다. 국제 협약 적용 시 구체적 세금 액수는 아직 안 나왔지만 매출 200조 원에 해외 매출 비중이 90% 가까이 되는 삼성전자가 다른 나라에 낼 세금이 많이 늘 것이다. 한국 매출이 6조 원인 구글과 다른 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 낼 세금이 이를 상쇄할지는 불분명하다.
이번 합의안의 최저 법인세율은 15%로 이에 미달하는 국가에 소재한 기업은 다른 나라에서 세금을 더 걷을 수도 있다. 한국의 현재 법인세율은 지방세를 포함해 최고세율이 27.5%다. 정부는 우리나라 세율이 최저 요건을 충족했기 때문에 아일랜드와 같은 12.5%의 낮은 세율 국가처럼 세수 유출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사실 글로벌 법인세 개편은 세수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가 있다. 기업과 국적을 연결하는 고리가 더욱 엷어졌다는 점이다.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때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40조 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기업의 미래에 중요한 미국 시장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이제 세금도 실제 영업 활동을 하는 데서 내게 되면 정말 한국 기업이 아닌 다국적 기업이 되는 셈이다.
이들 기업의 해외 투자와 외국에 대한 세금 납부로 국내 고용과 재정에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이를 막는 건 답이 아니다. 한국 기업이 국제 경쟁을 뚫고 성장하도록 도와주고 외국 기업도 국내에 들어와 투자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한국 기업의 해외 투자액은 연간 300억 달러가 넘는데 외국 기업의 한국 투자는 불과 100억 달러 정도다.
갑과 을의 관점에서 외국 기업을 보는 시각도 바꿔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외국 투자가들을 초청해 식사하며 한 말이 기억난다. “여러분들 한국에서 돈 많이 버세요.” “그래서 세금도 많이 내세요.”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글로벌 법인세 개편으로 세율을 갖고 경쟁하는 체제가 끝나고 경제 펀더멘털에 기반해 경쟁하는 시대로 들어간다고 했다. 연구개발(R&D) 기반을 확충하고 노동시장 경직성을 줄이며 정부 규제를 풀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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