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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What] 탈탄소 압박에 구조조정…석유 메이저 자산 160조원 매물로

BP 등 잇따라 '탄소제로' 선언

더치셸, 美최대 유전 매각 검토

엑슨모빌 올 10억弗 자산 처분

신재생 에너지 사업 실탄 마련

"자산 주인만 바뀌는 것일 뿐"

기후변화 달성에는 회의론도

사진 설명




글로벌 석유 메이저 기업들의 자산 매각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고 있다. 영국과 네덜란드 합작사인 로열더치셸은 지난 6월 미국에서 가장 큰 유전 매각 검토에 착수했다. 앞서 올 초에는 미국 업체 엑슨모빌이 영국과 북해에 보유한 유휴 탐사 및 생산 자산을 노르웨이 사모펀드 하이테크비전에 10억 달러(약 1조 1,512억 원) 이상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투자자와 행동주의 단체들의 탈탄소 압박과 경기회복 전망에 유가마저 급등하면서 신재생에너지 사업 자금 확보를 위해 몸집 줄이기에 나선 셈이다.

이와 관련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분석 기사에서 현재 매물로 나온 글로벌 석유 기업의 자산 규모가 1,400억 달러(약 160조 1,880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뭐니 뭐니 해도 석유 메이저 업체의 자산 매각은 탈탄소 전환 흐름과 맥이 닿아 있다. 맥킨지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42%는 석유·가스 산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을 섭씨 2도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파리협약이 2016년 11월 발효된 후에는 석유 산업 재편 움직임까지 본격화하는 상황이다.

한국을 포함한 100개 이상 국가들이 이미 30년 내 탄소 배출량을 완전히 줄이겠다고 약속한 가운데 유럽연합(EU)은 14일 오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 목표를 이루기 위한 로드맵까지 내놓았다. 역내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최소 55% 감축하기 위해 탄소국경세를 도입하고 2035년부터 EU 내 신규 휘발유·디젤 차량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국제사회의 압박과 산업 환경 변화의 움직임에 메이저 기업들은 잇따라 탈탄소를 선언하고 있다. 지분 인수로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진출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지난해 2월 2050년까지 탄소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엑슨모빌은 지난해 말 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6년 대비 15~20% 줄이겠다고 밝혔다. 셸도 올 초 탄소 배출량을 2050년까지 2016년 수준에서 100% 줄이는 목표를 제시했다. 프랑스 에너지 기업 토탈은 1월 인도 재생에너지 기업 아다니그린에너지 지분 20%를 매입하는 등 탈탄소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럼에도 국제사회의 압박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네덜란드 법원은 5월 말 기후변화의 책임을 물어 셸에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5%로 감축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셸은 탄소 배출량을 2030년 20%, 2035년 45%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법원이 달성 시기를 5년 더 앞당기라고 지시한 것이다.



또 엑슨모빌 주주들도 5월 말 주주총회에서 헤지펀드 엔진넘버원이 지명한 이사 후보 4명 가운데 2명을 이사로 선출했다. 헤지펀드는 엑슨모빌 지분을 0.02%밖에 보유하지 않았지만 탈탄소 시대에 대비해 2050년까지 탄소 중립 달성 등의 경영 전략 수정을 요구했고 다른 주주들이 이에 동조해 이사 자리 2개를 확보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5월 2050년까지 탄소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세계는 더 이상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에 대한 새로운 투자를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런 메이저 석유 업체의 자산 매각이 기후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고 꼬집는다. 사실 탈탄소 요구는 압박이 쉽게 통하는 상장 업체에 집중돼 있지만 이들 기업의 석유 생산량은 일부에 불과하다. IEA에 따르면 상장된 기업은 전체 석유·가스 매장량의 12%, 생산량의 15%만 책임진다. 그 외 대부분은 내부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국영 석유회사들이 장악하고 있다.

여기에 하이테크비전 같은 비상장 민간 업체들과 화석원료 의존도가 높은 필리핀·태국 같은 개발도상국들도 석유 자산 매입에 나서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석유 메이저 업체의 자산 매각이 원유 생산 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믿지만 실상을 꼼꼼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탈탄소 압박에 덜 민감한 이들에게 자산이 이전될 경우 자산 매각 효과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RBC캐피털마켓의 비랴 보르카타리아 연구원은 “거대 석유 기업들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가장 빠른 방법은 관련 자산을 처분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자산 매각 자체는 그저 자산의 주인만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넷제로가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공론이라는 비판마저 나온다. 컬럼비아대 글로벌에너지센터 책임자인 제이슨 보도프는 “기후 목표를 달성하려면 석유 수요가 급격히 감소해야 하지만 오늘날 기후에 대한 야망은 현실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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