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 가는 나라 양반집 후손으로 태어났다. 3·1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옥고를 치렀다.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저항 작가 대열에 앞장섰다.
서른 살 늦깎이 문학청년이었건만 불꽃처럼 타올랐다. 시·소설·희곡에서 고루 한 권씩 창작집을 내놓았다. 시집 ‘봄 잔디밭 위에’, 소설집 ‘낙동강’, 희곡집 ‘김영일의 사(死)’를 잇달아 출간했다. 그사이 ‘산송장’과 ‘그 전날 밤’을 번역했다.
그러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먹고사는 일이 고달파 팥죽 장수로 나서기도 했지만 처자식마저 버릴 만큼은 아니었다. 간 곳을 아무도 몰랐고, 알더라도 말할 수 없었다. 행방은 한참 뒤에야 밝혀졌다.
식민지를 탈출한 작가는 차디찬 북쪽 나라로 떠났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참 더 올라가야 하는 도시, 아무르강과 우수리강이 만나는 하바롭스크에서 새 가정을 꾸렸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신문과 잡지를 내고 모국어로 작품을 썼다. 망명객은 그곳에서 해방과 혁명을 꿈꾸었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었을까. “그러나 필경에는 그도 머지않아서 다시 잊지 못할 이 땅으로 돌아올 날이 있겠지.” 망명 전야에 발표한 대표작 ‘낙동강’을 그렇게 끝맺고 탈출한 길이었다. 소설 속 청년은 3·1운동 때 옥살이하고 나와 북방을 떠돌며 투쟁에 헌신한다. 고향에 돌아온 청년은 침략자들과 맞서 싸우다가 잔인한 고문 끝에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이 청년이 아니다. 청년이 희생된 뒤 북행 열차를 타고 떠나는 소설 속 ‘그’의 이름은 로사. 작가는 백정의 딸이자 저항 투사로 거듭난 로사의 뒤를 따랐다.
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이름을 딴 로사는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을까. 망명 10년 만인 1937년 9월 18일 새벽, 작가는 하바롭스크 집 서재에서 소련 비밀경찰에 체포됐다. 천황의 제국에 반기를 들고 숨어든 혁명가가 뒤집어쓴 죄목은 일본 제국주의 스파이. 스탈린은 사형을 선고했다. 1938년 5월 11일 밤, 44세의 망명 작가는 총살당했다. 한국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끔찍한 비극이다. 식민지 작가 ‘그’의 이름은 조명희.
해방과 혁명을 꿈꾸는 것은 어렵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꿈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모진 결단과 희생 앞에서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조명희는 삶과 문학이 일치하는 바로 그 순간을 향해 투신했다. 비록 자신은 해방과 혁명의 날을 맞이하지 못할지라도.
식민지 문단에서 조명희는 진지하게 고뇌하는 사색가로 기억됐다. 그런가 하면 민중의 힘과 역사의 운동에 대한 믿음을 우리말 번역에 새겨 넣었다. 레프 톨스토이의 희곡 ‘산송장’과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그 전날 밤’이야말로 번역가 자신의 초상이나 다름없다.
톨스토이 타계 직후 유작으로 발표된 ‘산송장’은 사랑과 희생이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그려 큰 반향을 얻었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여러 차례 무대에 오르고 주제가가 인기를 끌었다. ‘산송장’의 주인공은 기묘한 운명에 처한다. 자기 아내와 아내의 첫사랑 사이에서 인연을 맺어 주기 위해 애써야 하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시체를 자처한 것은 개인의 도덕적 타락에서 비롯됐지만 귀족계급의 위선과 사회적 모순이 여지없이 폭로된다. 주인공은 스스로 구렁텅이 속으로 뛰어들어 몸부림치다가 끝내 비극적인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투르게네프의 ‘그 전날 밤’이라는 제목은 수천만 농노 해방의 전야를 가리킨다. 모스크바 귀족인 여주인공은 식민지 불가리아 출신의 가난한 고학생과 사랑에 빠진다. 해방과 혁명의 전쟁터를 향해 함께 떠나는 길에서 연인이자 동지가 죽지만 여주인공은 식민지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리지 않는다. ‘그 전날 밤’은 새로운 여성 투사의 탄생을 보여줄 뿐 아니라 지배 체제의 숨통을 끊어낼 자유와 평등의 날이 머지않음을 예고한다. ‘낙동강’의 로사가 그러하듯이.
식민지 지식인의 자화상이나 다름없는 ‘산송장’, 해방과 혁명을 노래한 ‘그 전날 밤’이 번역되고 ‘낙동강’이 발표된 것은 놀랍기까지 하다. 특히 ‘그 전날 밤’은 신문에 연재되다가 급박하게 마무리된 뒤 어렵게 단행본으로 빛을 봤다. ‘낙동강’은 셀 수 없는 × 표시가 얼룩진 상태로 간신히 독자와 만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조명희의 작품 가운데 악랄한 검열의 칼날에 다치지 않고 무사히 나온 것이라곤 없다.
조명희가 자신의 삶을 걸고 분투했듯이 ‘산송장’과 ‘그 전날 밤’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대결하며 식민지 언어로 번역됐다. 번역가는 지금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가장 먼저 꿈꾸며, 우리가 상상해 본 적 없는 미래를 가장 먼저 노래한다. 때때로 혁명이 번역가를 배신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