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 국회의원 74명이 5일 성명서를 내고 “북한이 평화 협상에 나올 것을 전제로 훈련 연기를 검토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이에 맞서 훈련 고수 입장을 재차 밝히면서 여당 내 분란이 격화할 조짐이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고도화된 계획에 정치권과 정부가 끌려가게 된 형국이라고 평가했다.
설훈·진성준 민주당 의원 등 범여권 의원 74명은 이날 공동 성명서에서 “북한이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상에 나올 것을 조건으로 8월에 실시할 예정인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연기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줄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달 남북은 1년 4개월 만에 통신선을 전격 복원했다. 얼어붙었던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를 다시 진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며 연기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여당 지도부는 이에 대해 “훈련 연기는 불가능”이라는 입장을 재차 표명했다. 송영길 대표는 “남북 통신선이 회복한 것만으로는 (연기가)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미연합훈련을 두고 여권 내 분란이 커질 조짐을 보이자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북한의 노림수에 걸려들었다고 평가했다. 신인균 경기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 부부장의 담화 발표 이후 미국에 한미연합훈련을 사실상 중단하자고 압박하면 미국에도 ‘김여정 하명’ 프레임을 씌우는 꼴”이라며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미국이 동맹국과 함께 가려는 대중 견제 등 전체적인 대외 정책에서 조금씩 한국과 거리를 두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역시 “미국은 현재 이란 핵 합의에 강경한 입장인데 우리 정부가 갑자기 북한에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면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되는 상황”이라며 “한미 동맹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꼬집었다.
여당 일각에서 한미연합훈련 연기를 강력히 요구하면서 훈련이 축소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국방부는 훈련 시기와 규모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이날 거듭 밝혔다. 당초 한미 양국은 오는 10일부터 나흘간 사전 연습 성격의 위기관리 참모 훈련을 한 뒤 16~26일 후반기 한미 연합 지휘소 훈련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훈련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만큼 갑작스러운 연기는 쉽지 않지만 훈련 규모가 축소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19 확산세 등을 명분으로 내세워 참여 인원을 줄이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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