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창립 52년 만에 처음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5월 대국민 선언을 통해 무노조 경영을 포기한다고 발언한 뒤 1년여 만에 노사가 함께 만들어낸 성과다. 재계는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노조와 공생을 시작하면서 삼성그룹 노사 관계 전반에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날지 주시하고 있다.
12일 경기도 용인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나노파크에서 삼성전자 사측과 노동조합 공동교섭단의 첫 단체협약식이 열렸다. 사측을 대표하는 김현석 대표를 비롯해 최완우 반도체(DS) 부문 인사팀장 등이 자리했다. 노조 측에서는 삼성전자 내 4개 노조가 모여 만든 공동교섭단의 교섭위원인 김향열·이재신·김성훈·진윤석 위원장이 참석했다. 김만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위원장도 참석했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해 11월 3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9개월간 교섭을 이어왔다. 단협 체결까지 진행한 본교섭과 대표 교섭 횟수는 30여 차례. 설득과 이해·양보가 더해진 결과는 지난달 30일 양측이 잠정적으로 합의한 단체협약안으로 도출됐다. 모든 사항이 외부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헌법에서 보장한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약속하는 데 초점을 맞춰 협약 사항이 조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는 노조에 별도 사무실을 제공하고 근로 시간 면제 한도 내에서 유급 조합 활동 시간을 보장하며 조합 홍보 활동의 기준 등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협 조항은 총 95개로 구성됐다.
김현석 대표는 “오늘은 삼성전자가 첫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의미 있는 날”이라며 “앞으로 노사가 상호 진정성 있는 소통과 협력을 통해 발전적 미래를 함께 그려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향열 삼성전자사무직노조 위원장은 “삼성전자 최초의 노동조합으로서 사원들에게 노조가 항상 옆에 존재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인식되도록 힘 써왔다”며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단협 체결이라는 꿈이 이뤄졌고 9월부터 진행되는 임금 협상도 공동 교섭을 통해 좋은 결과를 얻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앞서 삼성전자 5개 계열사 중 삼성디스플레이 노사가 올해 1월 가장 먼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삼성SDI 노사 역시 지난해 9월부터 교섭을 거쳐 지난 10일 단체협약을 마무리했다.
삼성전자 단체협약 체결 다음날인 13일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가석방으로 출소하는 날이어서 의미가 더 크다.
이 부회장은 국정 농단 사건 등 여러 수사·재판을 받으며 삼성과 총수 일가가 부정적 과거와 단절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해왔다. 삼성 준법경영감시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난해 5월 대국민 회견 때 무노조 경영 폐기를 명시적으로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이 부회장은 대국민 회견에서 “삼성의 노사 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할 것이며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에도 이 부회장은 “준법이 삼성의 문화로 확고하게 뿌리내리도록 하겠다” “삼성을 준법을 넘어 최고 수준의 투명성을 갖춘 회사로 만들겠다” 등 여러 차례 준법 경영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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