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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인문학] 70년 전 우리는 적국 난민도 보듬었다

■학교서 배우지 않은 문학이야기- 정광현 번역 ‘내가 넘은 삼팔선’

박진영 성균관대 국어국문학 교수

만주국 관리 부인이었던 후지와라

식민지 해방후 세아이와의 귀국길

국가도 내팽개쳐 공포스럽던 여정

그에게 국밥·잠자리 내준 한국인들

타국서 귀향 몸부림치던 처지 공감

日 여성 목소리로 평화메시지 전해

정광현 번역作 ‘내가 넘은 삼팔선(1949)’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끝났다. 영화 속 어떤 장면처럼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외쳤다. 정말 그랬을까. 돌아갈 집이 과연 있었을까.

꼭 35년, 누군가에게는 너무 길었고 누군가에게는 너무 짧았다. 식민지 백성들은 그토록 오래 노예의 삶을 견뎌야 할 줄 몰랐다. 침략자들은 그처럼 빨리 주인 자리에서 내쫓길 줄 몰랐다.

해방된 땅으로 향하는 발길이 이어졌다. 만주에서, 상하이에서, 시베리아에서, 일본 탄광에서, 인도와 미얀마 전선에서 한반도로 향하는 짐을 쌌다. 오래전에 쫓겨난 사람들일수록 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했다. 주먹밥과 개떡을 챙기고 옷가지·이불·솥단지를 이고 졌다. 아이들을 업고 안고 끌며 걸었다. 따지고 보면 집을 빼앗겨서 쫓겨났는데 어디로 돌아간다는 말인가. 누가 반겨줄 것인가. 다만 같은 말 쓰는 내 나라였을 뿐.

도망치듯 떠나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남의 땅에서 주인 노릇을 일삼던 일본인들이다. 존귀한 지배자에서 하루아침에 처참한 몰골로 전락한 사람들. 피비린내 밴 만주 관동군부터 식민지 후려치던 관료, 교사, 장사치, 아편과 밀매음으로 배를 불린 자들까지.

손에 피를 많이 묻힌 자들일수록 편안했다. 전쟁 포로로 잡힌 뒤 송환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과 아이들은 달랐다. 알거지가 된 일본 여성과 아이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으며, 각자 알아서 돌아가야 했다. 끔찍한 절망과 공포를 껴안고 길거리에서 구걸하며 헤맸다. 패전국 일본은 그들을 내팽개쳤으며 가부장들은 무기력했다.

길이 멀수록 힘겨웠다. 만주에서 신의주, 평양 거쳐 서울, 부산으로 몇 달 동안 걷고 또 걸으며 내려가야 했다. 굶주림과 핍박 말고도 몸서리치는 위협과 약탈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소련군, 미군, 중국인, 조선인, 심지어 같은 일본인 동포마저 믿을 수 없었다. 그나마 삼팔선에서 길이 끊겼고 현해탄에서 또 막혔다.

후지와라 데이 '흐르는 별은 살아 있다' (1949)


‘내가 넘은 삼팔선’의 원저자 후지와라 데이


일본인 여성이라고 돌아갈 집이 있을까. 미군에 점령된 일본, 아무리 조국이라 한들 식민지에서 굴러먹던 난민을 차별하지 않고 반겨줄까. 일본인 아이들은 대체 왜 떠나야 하는지 알기나 할까. 식민지에서 나고 자랐으며 식민지에서 학교 다닌 아이들의 고향이 대체 어디란 말인가.

‘내가 넘은 삼팔선’의 삽화




‘내가 넘은 삼팔선’의 삽화


해방되자마자 벌어진 대규모 월남 행렬이 한국인에게만 고통스러운 기억일 리 없다. 만주국 기상대 관리의 부인 후지와라 데이는 세 아이를 데리고 남하하면서 겪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흐르는 별은 살아 있다’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물론 무사히 일본으로 귀향해 간신히 남편과 재회한 뒤의 일이다.

패전 직후 일본은 원자폭탄의 희생양이라는 인식과 무고한 여성의 귀환 수난사를 통해 전범이자 침략자 신분을 교묘하게 피해자로 둔갑시켜왔다. 기만적이고 천박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인 여성과 아이들의 쓰라린 상처 역시 엄연한 사실이다.

‘흐르는 별은 살아 있다’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리자 발 빠르게 한국어로 소개됐다. 번역가 정광현의 안목과 과감한 결단 덕분이다. 시적인 원래 제목은 ‘내가 넘은 삼팔선’이라는 비극적인 회고로 바뀌었다. 해방 후 일본 서적은 엄격한 금기였다. 하지만 며칠 만에 판을 거듭하면서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됐고 무려 15년 동안 널리 읽혔다.

아닌 게 아니라 얼마 뒤 신문기자 정광현이 납북되면서 ‘내가 넘은 삼팔선’은 남한 당국의 의심을 샀고, 때때로 금서 목록에 오르락내리락했다. 왜 이런 책을 굳이 번역했을까. 한국인들은 어째서 후지와라 데이를 오래 기억했을까. 탈출하는 패자에게 두말 없이 국밥을 퍼주고 잠자리를 내준 한국인들에게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해서였을까. 후지와라 데이가 넘은 삼팔선을 한국전쟁 피란길로 착각하지나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내가 넘은 삼팔선 (1964)


후지와라 데이가 겪은 생지옥의 시간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만주에서, 중국에서, 일본에서 귀환하려고 몸부림치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와 똑같았다. 또 있다. 고난조차 공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만적인 폭력은 오히려 식민지인에게 훨씬 더 지독했다. 그리고 가부장과 국가가 잊어버리고 만 존재, 수많은 한국인 여성과 아이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번역은 나와 다른 남의 존재와 마주치게 해주며 우리 안의 약자를 불러낸다. 정광현의 ‘내가 넘은 삼팔선’은 우리 모두 후지와라 데이임을, 광란의 전쟁에 희생당한 똑같은 난민임을 일깨워줬다. 그리고 여성과 아이들이야말로 전쟁 때문에 가장 먼저, 가장 잔인한 운명에 처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적어도 70여 년 전의 한국인들은 적국의 난민마저 따뜻하게 보듬을 줄 알았다. 일본인 여성의 목소리를 빌려 우리는 타인에 대한 진정한 공감과 민중적 연대의 시선을 배웠다. 모든 난민의 희망은 단 하나, 오로지 평화뿐이다. 그런 난민을 밀쳐내는 것은 자기 자신을 버리는 짓이다.

박진영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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