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핵심 경제지표인 8월 구매관리자지수(PMI)가 1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사실상 ‘경기 위축’ 국면에 돌입했다는 평가다. 홍수 등 자연재해, 코로나19 봉쇄 등 각종 악재에 소비 위축 심화까지 경기 둔화 흐름이 예상보다 가파르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는 빅테크(대형 기술 기업)와 사교육·연예계·게임 등에 ‘홍색 규제’를 남발하고 있다. 집권 3연임을 앞둔 시진핑 국가주석의 살벌한 군기 잡기가 경제를 오히려 벼랑으로 내몬다는 지적이다.
동시다발 악재에 경기 급강
31일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의 8월 제조업 PMI는 전달의 50.4보다 낮은 50.1을 기록해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충격이 가장 심했던 지난해 2월 이후 18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한 시장 전망치인 50.2에도 미치지 못했다.
서비스업 등 비제조업 PMI는 47.5에 그치며 전월(53.3)과 시장 예상치(52)보다 크게 떨어졌다. 이에 따라 8월 종합 PMI는 48.8을 기록했다. 비제조업 PMI와 종합 PMI는 모두 지난해 2월 이후 처음으로 기준선(50) 아래로 내려앉았다. 제조업 PMI는 관련 분야의 경기 동향을 보여주는 지표다. 50을 기준으로 이보다 위에 있으면 경기 확장 국면, 이보다 밑에 있으면 경기 위축 국면으로 본다. 중국 경기가 지난해 초 코로나19 상황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날 자오칭허 국가통계국 수석통계학자는 “시장 수요가 감소했다”며 “물류와 숙박·임대·문화·엔터테인먼트 등의 활동지수가 임계점 아래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PMI 악화는 중국의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발생한 코로나19 재확산과 이에 따른 사실상의 ‘지역 봉쇄’에다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한 생산자물가 불안, 대규모 폭우 피해 등 여러 변수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데 따른 것이다. 서비스업 등 비제조업 PMI가 수출에 의존할 수 있는 제조업 PMI보다 더 악화한 것은 중국 내 ‘바닥 경기’가 훨씬 나쁘다는 의미다.
빅테크·주택·교육에서 게임까지 규제
코로나19 통제에 성공하며 다른 나라들보다 빨리 경제가 회복됐지만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 등으로 소비가 동력을 잃는 상황이다. 싱가포르 소재 낫웨스트마켓의 류페이첸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19 억제 때문에 서비스 부문에서 과도한 충격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중국 정부의 기업 규제가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주재로 30일 열린 ‘공산당중앙전면개혁심화위원회 21차 회의’에서는 반독점 정책을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시 주석은 “반독점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본질적 요구”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의 쓴소리로 시작된 빅테크 규제가 1년 가까이 지속됐지만 규제는 줄어들기는커녕 확산되고 있다. 당장 31일에는 연예인에 대한 사상 교육으로 사회주의 가치관을 학습시키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문화여유부는 “문예·오락 분야에서 불법행위가 나타났다”며 “문화예술 종사자에 대한 교육 관리와 도덕성 강화로 새로운 기풍을 수립하려는 취지”라고 밝혔다.
앞서 30일에는 청소년에게 1주일에 단 3시간만 온라인 게임을 허용하는 셧다운제가 발표됐고 공유경제 플랫폼도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군기잡기에 납작 엎드린 기업
중국 정부의 이 같은 규제 강화와 관련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가장 유력한 해석은 내년 가을로 예정된 시진핑의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3연임을 앞두고 전체 사회에 군기 잡기를 시도하면서 경제가 인질이 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중국 사회에 만연한 빈부격차와 부패를 일부 특정 세력에 돌리고 시진핑은 해결사 노릇을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미 기업들은 납작 엎드렸다. 지리자동차는 ‘1만여 명의 직원에게 주식 1억 6,700만 주(약 6,700억 원 규모)를 나눠준다’는 내용의 ‘공동부유 계획’을 발표했다. 앞서 텐센트도 18조 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추락하는 중국 경제다. 시진핑의 장기 집권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경제 성과가 나와야 하는데 최근 잇따른 규제로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미 정치 매체 포린어페어스는 “시진핑이 내부의 반대 기업가들을 억눌러 권력을 강화하면서도 기업 혁신을 통해 성장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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