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우리 정부의 재정 상황에 대해 돌연 “상당히 탄탄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날 국회에서 급증하는 재정지출을 우려하며 “곳간이 비어간다”더니 거대 여당이 나서 질책하자 사실상 반성문을 쓰며 하루 만에 재정에 대한 시각을 바꾼 것이다. 홍 경제부총리가 내년 예산안을 두고 재정 파수꾼을 자처하기는커녕 곳간 퍼주기에 또 동참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홍 부총리는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한국의 재정은 선진국에 비해 탄탄하다”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지난 6일 국회 예결위 종합 정책 질의에서 “국민이 어려웠을 때 얼마나 체감할 수 있게 지원했다고 보느냐”는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나라 곳간이 쌓여가는 게 아니라 비어가고 있다”고 받아쳤다. 또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의 국가 채무 지적에는 “채무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날 김한정 민주당 의원이 “한국 경제가 쌀독이냐. (곳간이 비어간다) 진위가 무엇이냐”고 쏘아붙이자 홍 부총리는 “진위를 얘기하자면 국가 채무가 최근 코로나19 대응 과정에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준은 선진국의 절반도 안 된다. 양호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홍 부총리는 이에 그치지 않고 ‘곳간이 비어간다’는 발언에 대해 사과까지 했다. 홍 부총리는 이 표현에 대해 “그것에 대해서는 고치겠다는 말씀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정이 아직까지는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탄탄하지만 정부로서는 건전성 문제도 굉장히 고민하면서 재정 운용을 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재차 ‘재정건전론’을 주장했다.
야권에서는 홍 부총리가 또 ‘백기’를 들었다고 비판했다. 예산안과 추경안을 편성할 때마다 여당에 밀려 증액에 동의하는 행태가 사상 최대인 604조 원으로 짜인 내년 예산안 심사에서도 반복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야권에서는 벌써 여당이 내년 대선을 겨냥해 선심성 재정 사업을 벌일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홍 부총리의 저자세를 볼 때 국가 빚을 늘려 재정을 쓰자는 정치권의 요구를 막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대선 주자인 원희룡 예비 후보는 홍 부총리를 두고 “나라 곳간을 거덜 내고 유체이탈 화법을 쓰고 있다”며 “나랏빚 1,000조 원의 하수인 홍남기 부총리님, 국민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돈이 어디로 쓰이는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 기재부의 전망만 봐도 내년에 국가 부채가 1,000조 원, GDP 대비 50%를 넘어선다. 하지만 한국은행에 따르면 2·4분기 국내 실질성장률은 0.8%를 보였지만 국민총소득(GNI)은 0.1%에 그치며 국민의 주머니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도 홍 부총리의 시각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을 쏟아붓지만 재정정책의 효과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며 “미래 세대가 짊어질 빚만 늘리다가는 재정 위기와 국제 신인도 저하, 외환시장 불안 등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