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30년 탄소 감축 목표치(NDC) 논의를 지켜보면 청와대와 국회가 일선 부처에 목표치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하향식 의사 결정 방식이 도드라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하면서 실무 부처는 중간 목표 격인 NDC를 상향 조정하기 위해 부랴부랴 논의에 나섰다. 실무 부처가 급진적 감축에 따른 사회 전반의 피해를 우려하며 32.5%부터 42.5%까지 다양한 감축치를 놓고 득실을 따져보는 와중에 이번에는 여당이 나서 2030년 감축률을 ‘35% 이상’으로 법에 못 박았다. 일종의 하한선을 그어 논의의 폭을 크게 좁힌 것이다.
일선 부처로서는 전체 탄소 배출 감축 압력이 거세질수록 산업계와 발전 업계에 더 높은 수준의 감축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획기적인 감축 기술 확보가 어려워 감축률이 높을수록 감산 규모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산업계의 호소는 탈(脫)탄소 드라이브에 묻히는 형국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2030년까지 이렇다 할 감축 기술이 없어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것보다 NDC를 충족하는 게 더 어려울 것”이라면서 “사회 각 분야의 피해를 세심하게 따져봐야 하는데 윗선에서 일방적으로 목표치를 투하하는 터라 여유가 많지 않다”고 토로했다.
탄소 다배출 철강·정유화학 감산 불가피
7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여당이 35% 이상의 NDC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가운데 정부 간 협의에서는 35~40% 수준의 감축률이 검토되고 있다. 동시에 산업 분야 감축률은 12.9~14% 수준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에 따라 2030년 산업 분야 탄소 배출량은 기준점이 되는 지난 2018년 보다 3,360톤 이상 감축한 2억 2,690만 톤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단일 업종 기준 탄소 배출이 가장 많은 철강 업체의 감축률은 2.8% 이상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계는 NDC 상향 조정에 따라 감산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철강 부문을 보면 글로벌 경제 성장세와 맞물려 2035년까지 철강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탄소 배출을 감축할 수단이 마땅치 않은 터라 NDC가 설정되면 증산은커녕 기존 생산량까지 줄여야 할 판이다. 조경석 한국철강협회 전무는 “용광로에 투입하는 스크랩 비중을 높이는 생산 방식을 조기에 도입해 탄소 배출을 일부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한국 철강 업체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 효율을 달성하고 있는 터라 감축 규모가 크지 않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화석연료를 주로 사용하는 정유화학 분야에도 10%대 감축률을 책정했는데 친환경 연료 전환이 적기에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정유화학 업계 역시 감산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탈탄소 드라이브…중국에 시장 내줄 수도
산업 분야 최대 경쟁국인 중국은 탄소 배출을 점진적으로 줄이겠다는 입장이라 산업계의 부담이 특히 크다. 한국 제조 업체가 국가 탄소 배출 총량에 발목을 잡힌 사이 최대 경쟁국인 중국이 투자를 늘려 경쟁력 격차를 좁힐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주중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최대 탄소 배출국인 중국은 2030년까지 현재보다 18% 이상 탄소를 더 배출할 예정이다. 전 세계적인 탄소 감축 압력에 맞춰 2060년 탄소 중립 달성을 공표했지만 이행 과정에서 탄소 감축으로 자국 산업의 성장세가 꺾이는 일은 피하겠다는 것이 중국의 방침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세계 최고 에너지 효율을 갖춘 우리 제조 업체의 가동률이 떨어지면 우리보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중국 등이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면서 국내 업체의 빈자리를 메울 것”이라고 했다.
다만 선제적인 탄소 감축으로 새로운 환경 규제에 대응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중국이 탄소 배출에 미온적이라면 유럽연합(EU)뿐 아니라 미국도 수입 상품에 대한 탄소세를 도입할 것”이라며 “국내 산업계가 당장 피해를 당할 수는 있지만 글로벌 탄소세가 도입됐을 때를 대비해서라도 일찌감치 감축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탄소 감축에 따른 득실을 정밀하게 따져 감축률을 신중하게 설정해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정부는 논의를 서둘러 매듭지으려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정부는 이달 내 NDC 상향안을 마련해 탄소중립위원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박호정 한국자원경제학회장은 “NDC 목표는 선언적이거나 권고적인 성격이 아니므로 구체적인 기술 로드맵이 제시돼야 한다”며 “목표의 적절성에 대해 산업계 의견도 함께 반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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