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수소충전소에서 ‘셀프 충전’을 금지하는 등 수소충전소 규제가 수소전기자동차 보급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이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 규제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반면 이웃 국가인 일본은 관련 제도를 소비자 위주로 바꾸며 수소전기차 시장 1위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셀프 충전 규제가 수소차 이용자들의 불편과 수소 충전 단가 인상으로 이어지는 만큼 관련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2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업계에 따르면 한국은 수소충전소를 운영하는 OECD 22개 국 중 유일하게 셀프 충전을 금지하고 있다. 현행 고압가스 안전관리법은 고압가스를 제조하거나 차량 탱크에 충전하는 자는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반 가스 주유소처럼 운전자가 셀프 충전하면 위법이다.
이는 셀프 충전은 물론 충전소 무인 운영까지 허가한 일본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일본은 지난 2018년 이미 운전자 셀프 충전을 법적으로 허용한 데 이어 지난해 1월 고압가스보안법 개정으로 수소충전소 무인 운영의 문을 열었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선진국들도 셀프 충전을 허용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프랑스 파리를 국빈 방문할 당시 수소차 운전자가 직접 수소를 충전하는 것을 보고 “정부도 충전소 구축 등 수소경제 생태계 확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으나 3년이 지난 지금 아무런 변화가 없는 상태다.
셀프 충전 규제는 소비자의 불편으로 직결된다. 환경부가 운영하는 수소충전소 위치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전국 74개 수소충전소 중 24시간 운영하는 곳은 울산 경동 수소충전소뿐이다. 수소충전소들이 대개 오전 8시에 문을 열고 오후 8~10시에 문을 닫는 만큼 출퇴근길 충전이 제약될 수밖에 없다.
세종특별시에 위치한 유일한 수소충전소인 하이넷 세종청사점은 토요일에 문을 닫는다. 만약 금요일 밤 세종에서 수소차 배터리가 떨어질 경우 꼼짝없이 일요일 해 뜨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수소충전소 상주 인원을 확보해야 할 경우 운영비 증가, 수소 충전 단가 인상으로 이어진다는 점도 수소차 보급에 부정적인 요소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수소충전소를 무인 운영할 경우 연간 운영비를 3억 6,000만 원가량 절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셀프 충전 규제를 없애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9년 ‘15~20분간 안전 교육 수강’을 전제로 셀프 충전을 허가하는 법안을 발의한 적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당시 강릉시에서 발생한 수소 탱크 폭발 사고 등을 들고 안전상의 이유로 반대했다.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폐기됐고 이후 관련 법 발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수소 인프라 규제와 정부의 의지 부족은 수소차 생산 1위 자리를 위협받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1~7월 수소차 시장점유율은 현대차가 74.3%로 선두를 달렸고 일본 도요타가 9.7%, 혼다가 3.2%로 뒤를 이었다.
그러나 올해 1~7월에는 현대차 점유율이 51.2%로 떨어진 반면 도요타는 40.1%로 올라 바짝 추격했다. 도요타가 신모델 미라이 2세대를 출범시킨 동시에 일본 정부가 수소차 관련 규제를 풀어 인프라를 조성한 결과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수소 충전 인프라 관련 규제를 풀고 수소차 보급을 견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셀프 충전이 금지될 경우 충전 인원이 상주해야 하고 고정비 지출 증가와 수소 충전 단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소비자 위주의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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