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으로 인해 중국 제조업의 세계 영향력이 약화된 틈을 타 한국은 미국 등 서방을 대상으로 중국을 대신할 수 있음을 계속 설득하고 제조업 경쟁력을 다져야 합니다.”
이근(사진)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는 지난 16일 ‘미중 패권 경쟁과 한국의 선택’이라는 주제의 유튜브 강연에서 “미중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지 않고 일정한 규범 속에서 이어간다면 한국은 제조업 분야에서 시간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저서 ‘경제 추적에 대한 슘페터학파적 분석’을 출간해 비서구권 교수 최초로 국제적인 경제학상인 슘페터상을 받은 산업 전략 연구의 권위자다. 지난달 서울대 석좌교수에 선정됐다.
중국 경제 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강연에서 미국의 견제에도 중국은 오래 버틸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맹렬하게 미국을 추격한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타격을 받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다시 살아나고 있다”며 “중국 자신들도 지구전을 천명한 만큼 속도가 감속될 수 있어도 추격은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국가와 기업이 새로운 모델(경로)을 창출하는 ‘비약(leapfrogging) 전략’이 추격·추월의 핵심이라는 이른바 ‘추격론’을 정립했는데 중국이 이 모델의 모범 사례라고 소개했다. 그는 “중국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와 4차 산업혁명을 기회의 창으로 삼아 도약했다”며 “미국이 중국에 필요한 반도체, 정보통신기술(ICT) 등 제조 장비를 막아 주춤하고 있지만 중국은 이미 디스플레이·배터리·전기차 분야 등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 부실 등 변수에도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2030년대 중반에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봤다. 다만 미중 갈등의 장기전 과정에서 세계 제조업의 중국 쏠림 현상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미국이 제조업 기반을 다시 구축하는 데 시간이 걸릴 만큼 서방 국가에 한국의 제조 능력과 역할을 알리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가 반도체나 조선처럼 기술 선도성을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는 “ICT와 달리 기술이 공개되지 않고 축적되는 소재·부품·장비처럼 진입 장벽이 높은 기술 분야에서 중국 추격을 따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중국의 기술 추격의 소스는 항상 한국·대만·일본이었다”며 “인수합병에 따른 핵심 기술 누출을 막도록 정부의 외국인 인수합병 허가권 및 통제를 늘려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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