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 소유한 고(故) 김환기 화백 작품 등을 빼돌려 수십억원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60대가 항소심에서 형량이 가중됐다. 21일 서울고법 형사7부(성수제 강경표 배정현 부장판사)는 김모(64)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6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또 김씨가 그림을 팔아 챙긴 수표 900만원과 현금 415만원을 피해자 가족에게 돌려주라고 명령했다.
김씨는 지난 2018년 11월 40여 년 스승인 A교수가 췌장암으로 건강이 악화되자 그의 수행비서 황모씨, 가사도우미 임모씨와 함께 '산울림'을 훔쳐 39억5,000만원에 판 혐의를 받는다. A씨는 같은 해 12월 투병 끝에 별세했다.
'산울림'을 팔아 약 40억원을 챙긴 김씨는 이 중 9억원을 범행에 함께한 이들에게 나눠준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검찰은 김씨가 오랜 인연을 맺어온 A씨로부터 그림을 판매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고 보고 횡령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지만, 이후 A씨가 그림을 무단으로 훔친 것이 밝혀져 절도죄로 적용 혐의를 변경했다.
1심에서 김씨는 A씨가 그림 판매를 위임했다며 무죄를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40억원에 이르는 그림을 친인척도 아닌 피고인에게 위임하고 대금사용도 허락했다는 건 수긍하기 어렵다"며 절도가 맞다고 인정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과정에서 검찰은 김씨가 '산울림' 외에도 김환기 화백의 그림을 비롯한 7점의 그림을 훔친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 김씨가 훔친 그림 8점의 감정가는 총 109억2,200만원에 달하고, '산울림'을 제외한 7점은 A씨 유족에게 반환됐다.
검찰은 또 김씨가 황씨·임씨와 공모한 정황을 파악해 죄명을 특수절도죄로 변경했다. 2명 이상이 합동해 절도한 경우 특수절도죄가 적용되는데, 김씨가 황씨·임씨와 함께 그림을 훔친 만큼 이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김씨는 가사도우미 임씨까지 절도에 가담할 줄 몰랐다며 특수절도죄 적용은 부당하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죽음을 앞둔 시점을 이용해 개인적인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범행에 이르러 범행 동기도 매우 좋지 않다"면서 "A씨는 현재까지도 그림의 처분과 처분대금의 사용을 허락받았다는 취지로 범행을 부인하며 공범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의 상속인들은 그림의 반환이 어렵게 된 점에 대해 A씨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고, 범행 발각 후에도 피고인이 배우자 이름으로 부동산을 사는 데 돈을 쓴 것으로 보이는 등 동기가 좋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공범인 수행비서가 피해자의 상속인에게 그림 7점을 반환했고, 그림의 판매대금 일부인 8억원 상당을 수사기관에 임의제출한 사정을 고려했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한편 김씨와 공모해 그림을 훔친 혐의(특수절도)로 기소된 황씨와 임씨는 1·2심 모두 각각 징역 2년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상고 없이 올해 1월 판결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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