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강타한 공급 병목 현상이 기업의 생산 체계를 바꾸고 있다. 생산 비용이 낮은 원거리 지역에서 부품을 조달하고 상품을 제조해온 다국적기업들이 생산 시설을 본사 가까이에 두거나 자체 생산으로 전환하는 추세다.
1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다국적기업들이 오프쇼어링(Offshoring·생산 시설 해외 이전)과 아웃소싱(외주) 전략을 버리고 비용 절감보다는 생산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기업들은 인력과 시설을 본사 인근으로 이전하거나 납품 업체 근처로 생산 공장을 재배치하는 상황이다. 아예 납품 업체를 사들이거나 외부 계약 업체를 사내 조직으로 만들어 자체 생산에 나서는 기업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탈리아 의류 회사 베네통은 태국에 있던 생산 공장 외에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터키 등 지중해 인근 유럽에도 제조 시설을 짓기로 결정했다. 이는 수십 년간 저가 노동력을 기반으로 했던 아시아 생산 전략을 철회한 것이라고 WSJ는 전했다. 제품의 58%를 아시아 지역에서 생산해온 베네통은 향후 12~16개월 안에 아시아 공장을 절반으로 줄일 계획이다. 마시모 레논 베네통 최고경영자(CEO)는 “원자재 조달과 물류 운송에 차질이 생겨 생산 비용이 급격히 늘고 있다”며 “공급망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애틀랜타에 본사를 둔 미국 3위 주택 건설 업체 펄트그룹 역시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제조 시설을 새로 짓고 있다. 해당 공장에서는 건축 부품 조립이 이뤄질 예정이다. 라이언 마셜 펄트그룹 CEO는 “자재 조달뿐 아니라 숙련된 노동자를 자체 고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돈이 더 들더라도 유연한 자재 공급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다. 마셜은 “추가로 6~8개의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철강 업체 마제스틱스틸도 납품 업체와의 물리적 거리를 줄이기 위해 주요 납품 업체인 뉴코어의 공장 부지에 생산 시설을 만들기로 했다. 칵테일 기계를 생산하는 미국 스타트업 바테시언도 중국이 아닌 시카고 외곽에 재활용 가능한 캡슐 공장을 세운다. 시카고에서 생산하면 비용이 더 들지만 운송 정체에 시달릴 일은 없기 때문이다. 이 회사 CEO인 라이언 클로스는 “우리가 통제권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우리는 납품 업체에 좌지우지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 델타항공도 코로나19 대확산 이후 공항 인력 수천 명을 직접 고용했다. 도급 업체들이 기내 청소 인력 등을 충분히 공급하지 않아서다. 델타항공 CEO인 에드 배스천은 “도급 업체들을 기다릴 수 없어 '인소싱'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오프쇼어링 및 아웃소싱 축소로 생산 기지로서의 아시아 국가들의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엘런 컬먼 골드만삭스그룹 이사는 "아시아 제조 시설에 의존했던 자동차·의료 등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점점 더 미국으로 돌아오기를 원한다”며 “기업들이 공급망 문제에 갇혀 사업 기회를 잃고 있음을 인식했다”고 분석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