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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교사가 억지로 밥 먹여 PTSD 진단…"아동 학대 아니다"

'유치원 선생님이 잔반 억지로 먹였다'

아동 고백 후 PTSD 진단까지 받았지만

구청은 "학대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

사법기관도 아동 정서학대 판단 제각각

전문가 "입증 힘든 정서학대의 경우

처벌보다 문제 개선 관점으로 접근해야"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 일러스트 이미지는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이미지투데이




서울 송파구의 한 대형 유치원에 딸 A(5) 양을 등원시키는 어머니 이 모(34)씨는 지난달 구청의 사례판단회의 결과를 듣고 깜짝 놀랐다. A 양이 최근 ‘유치원 선생님이 몇 달 전에 밥을 억지로 먹여 토했다’고 밝힌 후 정신과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까지 받았는데 아동 학대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구청이 재차 회의를 열어 판단을 보류하기로 했지만 이 씨는 “아이가 수십 번 일관되게 진술을 하는데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학대가 아니라는 설명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서 학대는 신체 학대만큼 아동의 발달을 저해하는 심각한 행동이다. 하지만 보육기관의 아동 정서 학대를 신고한 부모들은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서 학대의 특성상 물적 증거가 남지 않는 경우가 많은 데다 가해자의 고의성을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일 송파구 등에 따르면 송파구는 지난달 27일 아동학대심의위원회를 열고 A 양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온 후 학대 판단 여부를 재심의하기로 결정했다. 이보다 앞서 열린 사례판단회의에서는 ‘아동 학대로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이 씨의 이의 제기 후 판단을 바꾼 것이다. 송파구 관계자는 “학대로 보려면 반복성과 고의성이 중요한데 구청 조사에서는 확인하기가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씨는 “맨 처음 사례판단회의 때 구청이 자료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부분을 인정해 아동학대심의위원회가 열린 것”이라며 “아이의 녹음 파일에 ‘싫다고 했고 입을 막았는데도 선생님이 억지로 먹였어’라는 발언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고의성이 왜 입증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현재 서울경찰청은 A 양의 지난해 담당 교사였던 B 씨의 아동 학대 혐의를 수사 중이다.

정서 학대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판단이 어려운 영역으로 꼽힌다. 흔적을 남기는 신체 학대와 달리 폐쇄회로(CC)TV 등의 증거가 있지 않은 이상 입증하기가 어려워서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아동의 진술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연령 특성상 기억력과 사고력의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진술을 포함해 여러 증거를 조합해 학대 사실이 입증될 때 정서 학대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정서 학대는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판단하면 너무 많은 부모와 양육자를 처벌하게 되는 문제가 있고 좁게 판단해도 아동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과소평가할 수 있다는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사법기관의 판단도 제각각이다. 지난해 3월 대법원은 4세 유아를 78㎝ 높이의 교구장에 40분 동안 앉혀 정서 학대한 혐의를 받는 보육 교사에게 벌금 7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반면 올해 4월에는 숟가락에 담긴 음식을 장애 아동에게 강제로 먹인 혐의를 받는 특수교사에게는 무죄판결을 내렸다. 학대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정서 학대 사건을 판단할 때 처벌 가능 여부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문제 개선 관점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노 교수는 “신고가 들어오면 처벌까지 가지 않더라도 부모나 교사의 환경이나 심리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고 이를 바로잡는 방향으로 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서 학대는 성인기까지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며 “아동이 입은 피해에 초점을 맞춰 양육자 교육, 아동 피해 회복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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