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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수집한 녹취록, 증거 될 수 있을까 [Law&Scene]

■<3>증거의 필요충분조건

박성배 시장, 檢 도청 알고도 태연

법원선 '증거재판주의' 따라 판결

위법·강요 의한 증거는 채택 안해

내년부턴 피신조서 피의자 부인땐

증거 불인정…檢 수사변화 불가피

영화 ‘아수라’ 에서 박성배(황정민 분) 안남시장과 한도경(정우성 분) 형사, 김차인(곽도원분) 경기지검 특수부 검사가 은충호(김종수 분) 실장의 장례식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 ‘아수라’ 속 은충호(김종수 분) 실장의 장례식장. 박성배(황정민 분) 안남시장과 한도경(정우성 분) 형사의 날 선 대화가 오간다. 두 사람 사이에 급격하게 긴장감이 상승하는데 방아쇠를 당긴 건 한 형사였다. 그가 “난 언제 죽느냐”고 묻자, 박 시장은 “사람은 다 때가 되면 죽는다”고 답한다. 이어 “은 실장님도 자기가 죽는 거 알았어요”라는 한 형사의 말에 두 사람 사이 긴장감은 다시 팽팽하게 당겨진다.

다시 정적은 깬 건 한 형사 귀에 설치된 이어폰에서 흘러나온 도창학(정만식 분) 경기지검 특수부 수사관의 목소리였다. “그렇게 도발하지 말라”는 도 수사관 말에 한 형사는 “내가 알아서 물어볼거니까, 자꾸 간섭하지 말라”며 소리친다. 특히 박 시장에게 김차인(곽도원 분) 경기지검 특수부 검사가 두 사람 사이 대화를 엿듣고 녹음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힌다. 이윽고 한 형사가 옷 속 도청장치를 꺼내자 박 시장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하지만 박 시장의 굳은 표정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한 형사가 ‘검찰이 도청, 감청, 정보원을 통해 살인·마약 운반 증거를 수집했다’고 전했으나 그의 얼굴에 오히려 다시 화색이 돈다. 박 시장은 “불법으로 수집한 증거는 법원에서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거 모른데”라며 비웃는다.

검찰이 본인을 겨냥해 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박 시장이 금새 안심한 건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위법수집증거의 배제) 때문이다. 해당 조항에서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명시한다. 검찰이 지금껏 도·감청하거나 정보원을 통해 수집한 증거가 법에 어긋난 경우 법정에서 효력이 없다는 사실에 박 시장 얼굴에 금새 미소가 돌아온 것이다.



이는 우리 사법부가 증거재판주의(형사소송법 307조)에 따라 판결을 내리기에 가능하다. 해당 법 조항에서는 ‘사실 인정은 증거에 의해야 하고’ 또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로 증명해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같은 법 308조에는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 판단에 의한다’는 자유심증주의도 담고 있다. 검찰·경찰 등 수사 기관이 위법하지 않은 과정을 거친 증거로 판사가 인정할 정도로 혐의를 입증해야 피의자가 범죄를 인정한다는 얘기다. 그만큼 형사소송법에서는 증거가 인정받기 위한 여러 필요충분조건을 내걸고 있다. 대표적인 조항 가운데 하나가 제309조(강제 등 자백의 증거능력)다. 해당 조항에서는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신체 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으로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피의자 스스로가 죄를 인정하는 진술을 했더라도 그 과정에 폭행이나 강요, 협박 등이 있었다면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또 ‘자백이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유일의 증거인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고 310조(불이익한 자백의 증거능력)에 못 박고 있다.

법정 증거주의는 개정된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의 조소)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면서 한층 강화된다. 올해 말까지는 검사가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한 피신조서는 법정에서 증거 능력을 지닌다.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공판과정에서 그 내용을 부인하더라도 조서에 기재된 진술이 피의자가 실제 구술했다고 객관적으로 증명되고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행해졌다고 증명하면 법원은 증거로 채택한다. 반면 2021년부터는 검사가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한 피신조서도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공판과정에서 내용을 부인하면 증거능력을 읽게된다. 즉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진술조서의 내용을 인정할 때에 한해서만 법정에서 증거로 쓰일 수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으로 검찰이 피의자를 조사하고 기소해 범죄 혐의를 입증해 왔던 과정이 완전히 바뀐다”며 “피신조서 증거능력 제한으로 검찰의 수사와 기소, 공소 유지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검찰은 수사나 혐의 입증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며 “변화가 큰 만큼 검찰 안팎에서 무죄율 상승, 형사재판 장기화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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