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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택의 세상보기] 주4일제, 국가가 하면 탈 난다

현정택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공무원·공기업 꿈의 직장될 가능성

민간 기업에 일률적인 적용도 문제

학교는 학습 등 선결 과제 수두룩

획일적인 근로시간 조정 지양해야

현정택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일주일에 단 4일만 근무하는 꿈의 직장.’

한 학원 기업의 지하철 광고 문구다. 이러한 꿈을 이뤄주고자 대선 후보들이 나섰다. 주 4일제의 여론조사 결과도 찬성률이 높아서 솔깃해할 만하다. 하루 8시간씩 나흘 일하는 주 32시간 근무를 법으로 만들겠다는 공약까지 나왔다.

생활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워라밸, 즉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자는 욕구가 늘고 주 4일 근무를 택한 기업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는 건 사실이다. 생산성 향상 효과가 크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된다. 그런데 개별 회사를 넘어 국가 제도로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세계에서 법정 근로시간이 짧은 나라는 프랑스인데 지난 1998년 사회당 출신 리오넬 조스팽 총리 때 주 35시간 노동으로 줄였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생긴 일자리로 고용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하며 기업에 보조금도 줬다. 당시 파리의 주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에 있었던 필자는 과연 성공할지 귀추가 궁금했었다.

법 시행 몇 년 후 프랑스 정부가 조사단을 구성해 평가했는데 주 35시간 제도가 고용 창출 없이 사회경제적으로 부정적 효과를 끼쳤다고 결론지었다. 한국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도 실업률이 높아지는 등 프랑스 정부 정책이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한 번 만들어진 법을 되돌리기 힘들어서 시행 과정에서 보완하는 방법으로 대책을 꾸려 나와, 현재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때까지 여파가 이어졌다.

한국 시스템에서 나라가 주 4일제를 채택한다면 공무원과 공기업이 가장 먼저 시행하게 될 것이다.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민간에서 준용하도록 제도적·관행적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매주 4일 근무하면 연간 208일인데 여기서 국경일·명절 등 10~15일의 공휴일과 연가 20일 (5년 이상 공무원의 경우)을 빼면 일 년에 절반 미만 일하게 된다. 더하여 경조사 때는 특별 휴가까지 줘야 한다.



이렇게 적게 일하면서 봉급을 그대로 둬서는 안 되지만 관공서는 주인 없는 곳이라 법정 근무시간을 줄여도 현실적으로 봉급이 깎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경찰·소방 등 24시간 근무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기관은 추가 인력 소요가 불가피해져서 전체 인건비는 올라간다. 공기업도 특성상 근무시간을 줄여도 임금 수준은 유지돼 전체 인건비만 늘어날 개연성이 높다. 그러지 않아도 ‘철밥통’이라는 신분 안정과 후한 연금 혜택을 지닌 공무원과 신의 직장이라는 공기업을 그야말로 꿈의 직장으로 만들어주게 될 것이다.

코로나19로 학교가 문 닫았을 때 맞벌이 부부 등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었다. 학교를 주 4일제로 바꾸려면 학습·급식·돌봄 등 선결해야 할 과제가 수두룩하다.

민간 기업에 주 4일제를 법으로 적용하는 것도 문제다. 많은 중소기업 종사자와 소상공인은 워라밸보다 생존이 더 급하다. 해마다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쏟아져 나오며 아르바이트와 건설 현장을 찾아 헤매는 일용직 노동자가 부지기수다.

대기업이라고 일률적으로 근무 일수를 단축할 수는 없다. 제조업 현장에서는 공장과 기계 가동 상황에 맞춰 일해야 하며 업종에 따라 근무 방식이 다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주당 52시간을 넘겨 일할 수 없도록 만든 강제 규정 때문에 애를 먹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파트 타임, 프리랜서, 재택근무 등 일하는 형태가 다양해졌다. 유니폼에 길들었던 시대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획일적인 근로시간 조정을 지양해야 한다. 주 4일제를 선거 공약으로 내건 사례가 있다. 2019년 영국 총선의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인데 의석 60석을 잃고 참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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