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서울 서초구의 한 회사에서 발생한 이른바 '생수병 사건'에 대한 수사를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했다. 경찰은 피의자가 인사와 업무 관련 불만을 품고 같은 회사 동료들의 생수와 음료수에 독극물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단독 범행을 저질렀다고 결론 내렸다.
경찰은 16일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언론 브리핑을 열고 살인·살인미수 혐의로 입건된 피의자 30대 강 모씨의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이날 종결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관련자 조사, 사무실 수색, 휴대폰 포렌식 등 수사를 이어온 결과 공범이 있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은 전혀 없었다"며 "강 모씨의 단독 범행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18일 이 회사에서는 직원 2명이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생수병에 든 물을 마신 뒤 한 시간 간격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다. 여성 직원 A(35)씨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회복했지만 남성 직원 B(44)씨는 중태에 빠졌다가 결국 숨졌다. 같은 달 10일에는 또 다른 직원 C씨가 음료수를 먹고 쓰러지는 일이 있었다.
강씨는 사건 발생 이튿날인 지난달 19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숨진 강씨의 혈액에서는 피해 직원들의 혈액에서 나온 것과 동일한 독극물이 검출됐다. 강씨는 피해자 세 명과 같은 팀에서 근무했으며 C씨와는 한때 회사 기숙사를 같이 쓴 적도 있었다. 숨진 B씨는 강씨가 속해 있던 팀의 팀장이었다. 강씨는 지난 9월 초 휴대폰으로 독극물을 검색한 후 같은 달 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강씨의 범행 동기를 인사와 업무 관련 불만으로 추정했다. "강씨가 평소 지방 인사 발령을 듣고 불만을 품었을 수 있다" "잦은 업무 지적에 불만이 있어 보였다"는 회사 직원들의 진술, '짜증난다' '제거해버려야겠다'는 문구가 적힌 강씨의 메모 등을 종합한 결과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가 숨져) 피의자 조사를 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여러 가지를 수사해서 (범행 동기를) 특정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경찰은 강씨가 세 사람을 특정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봤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 중 C씨는 강씨와 룸메이트였고 친밀했는데 강씨가 '인사 문제가 있으면 나서서 막아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갖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강씨의 메모에 (여성 직원) A씨에 대한 원망도 적혀 있었다"며 "나이와 직급이 같은데 자신에게 일을 많이 시키고 부려먹는다는 생각을 강씨가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만 피의자 사망, 폐쇄회로(CC)TV 부재 등으로 인해 강씨의 범행 동기와 방법이 완벽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회사 측의 신고가 늦게 이뤄지며 경찰은 사건 발생 8시간 후에 범행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생수병을 수거했다. 국과수 감정 결과 해당 생수병에서는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마신 생수병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강씨가 생수병을) 바꿔치기 했을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객관적으로 나온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강씨가 범행 이후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에 대해서도 경찰은 "유서가 없어서 정확한 증거가 발견된 것은 없다"며 "참고인 진술에서도 극단적 선택의 이유를 추정할 만한 진술은 없었다"고 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발견한 독극물 구매 절차상 문제점을 관계부처에 전달할 계획이다. 강씨는 회사 거래처 명의를 이용해 독극물을 구입했는데 관련 절차에 따르면 판매자는 구매자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판매를 해야 하지만 별도의 처벌 규정은 없다. 경찰 관계자는 "(독극물 구매) 절차상 허점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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