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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정신은 솔직함…모든 걸 드러낸 詩人이었다"

[인터뷰]홍기원 김수영문학관 운영위원장

27일 시인 탄생 100주년 맞아

그의 47년 삶 더듬은 책 펴내

증언 꺼렸던 가족들도 인터뷰

거제 아닌 부산서 포로 생활 등

잘못 알려졌던 사실 바로잡아

시인 김수영./사진출처=김수영문학관 홈페이지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시인 김수영은 자유롭고 싶었다. 시대의 엄혹함도, 사상의 비정함도, 그를 향한 가족의 기대와 주변 지인들의 평가도, 그 무엇도 자신을 구속할 수 없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게, 그리고 세상 앞에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이기에 숨기고 싶은 비밀이나 약점이 있었을 터. 게다가 어떤 부끄러운 생각은 밖으로 드러내는 순간 세간의 비난을 불러와 자신을 옭아맬 게 뻔했다.

그럼에도 김수영이 끝내 선택한 건 솔직함이었다. 숨김 없이 다 드러냈다. 그로 인해 무모하다는 비판이나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모든 걸 털어냈고, 누구보다 정직하고 단호하게 시로써 세상을 향해 포효했다. 부정직한 세상을 단단히 꾸짖었다.

한국 문학사의 ‘거대한 뿌리’ 김수영. 오는 27일은 그가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각처에서는 그의 문학적 성취와 유산을 더욱 더 깊이, 더 제대로 평가해 보기 위한 기념 학술 행사가 연이어 열리고 있다. 그 바쁜 와중에 김수영문학관의 홍기원 운영위원장은 시인의 삶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최근 마무리했다. 시인의 출생부터 사망에 이르는 행적 전반을 심층 취재한 결과물을 ‘길 위의 김수영(삼인 펴냄)’이란 제목의 책으로 엮어 내놓았다.

홍기원 김수영문학관 운영위원장.


책 출간을 기념해 서울경제와 만난 홍 위원장은 “사람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주어진 역할을 감당해야 할 때가 있다”며 “시인에 대해 저보다 잘 아는 사람들, 전문가들이 많지만 세간에 일부 잘못 알려진 이야기에 대한 ‘바로 잡기’ 사업을 제가 맡게 됐고, 그 역할을 해낸 결과가 바로 이 책”이라고 말했다.

홍 위원장은 2011년 서울 도봉문화원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시인과 인연을 맺었다. 그 전에는 그 역시 ‘풀’이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폭포’ ‘푸른 하늘을’ 등의 작품을 좋아하는 평범한 독자의 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학생 운동을 하던 젊은 시절에는 김수영의 시를 읽으며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그랬던 홍 위원장은 도봉문화원에서 현대사 인물 자료집을 만드는 작업을 하던 중 시인의 가족들과 연락이 닿았고, 이어 2013년 김수영문학관 설립 과정에서 시인의 누이 동생인 김수명 관장과 함께 일하면서 김수영에 대해 깊이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홍 위원장은 그간 문학관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지난 6월 운영위원장 직을 맡았다.



서울 도봉서원 앞에 위치한 김수영의 ‘풀’이 새겨진 시비./사진출처=김수영문학관 홈페이지


홍 위원장은 김수영의 삶을 드러내는 장치로 ‘길’과 ‘장소’를 택했다. 김수영이 1921년 태어난 이후 1968년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의 행적이 남아 있는 64곳의 의미를 되짚었다. 시인이 태어난 종로의 할아버지 집, 조양유치원, 계명서당 등 유년 시절은 물론 일본 도쿄, 만주 길림, 연희전문학교, 돈암동 신혼집, 포로수용소, 마포 구수동 집 등 시인 삶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갔다. 현장 답사 뿐만 아니라 시인의 유작을 연구하고, 문단 원로들을 꼼꼼히 인터뷰해 책을 완성했다. 무엇보다 시인의 가족들이 홍 위원장의 ‘바로잡기’ 노력에 힘을 보탰다. 그간 김수영과 관련해 증언하길 꺼려했던 가족들이 마침내 입을 연 것이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홍 위원장은 시인이 포로 생활을 한 곳이 거제가 아니라 부산이라고 바로 잡았다. 부인 김현경과 김수영의 학교 선배 이종구의 만남 그리고 당시 김수영이 처했던 상황에 대한 세간의 오해도 새로 정리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모호하게 남아 있는 부분이 있다고 홍 위원장은 말했다. 그는 “김수영 시인 뿐 아니라 가족들도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해서 살았다”며 “그렇기에 쉽게 말하기 힘든, 가슴 아픈 가족사가 그들에게 있다”고 전했다. 홍 위원장은 “시인의 막내 동생인 김수환 선생과 김수명 관장이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긴 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마음 속에 깊이 그어진 휴전선을 다 뛰어넘지는 못하신 것 같다”며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시인이 걸어간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본 홍 위원장에게 ‘현 시대에 가장 중요한 김수영 정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김수영 시인은 자신의 모든 욕망과 생각을 과감하게, 솔직하게 다 드러냈습니다. 아마도 시인들의 99%는 ‘죄와 벌’이나 ‘성(性)’ 같은 시는 도저히 쓸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난 받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인간 실존의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했고, 그걸 독자들에게 100% 정확한 평가를 받길 원했던 거죠. 그게 바로 김수영 만의 ‘시인적(詩人的)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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