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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노태우의 기구한 운명…盧 별세 28일 만에 본인도 떠나[전두환 사망]

육사 동기로 만나 줄곧 ‘최고통치자-2인자’ 관계

김영삼 때 구속, 김대중과 합의 따라 특별사면

법의 심판 받으며 두 사람 관계 소원해지기도

2014년 8월 전두환, 병상에 누운 노태우 찾아가

전씨, 노 전 대통령 빈소 찾지 못하고 홀로 눈물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했다. 사진은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오른쪽)·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연합뉴스




군사 반란(쿠데타)로 집권한 정부의 1인 자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제11대)이 사망했다. 함께 쿠테타를 도모한 노태우 전 대통령(제12대)이 떠난 지 28일 만이다.

두 사람은 60여 년 간 질긴 인연은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한 지 한 달도 안돼 전 전 대통령도 떠나면서 막을 내렸다. 지난달 26일 노 전 대통령의 부고를 들은 전 전 대통령은 침묵 속에 눈물을 흘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건강 문제로 빈소를 찾아 조문하지 못했다. 대신 부인 이순자 여사가 대신 조문했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고교 때부터다. 전 전 대통령은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대구에 정착해 같은 해 대구공고를 졸업했다. 한 살 어린 노 전 대통령은 대구공고의 전신인 대구공업중을 거쳐 1951년 경북고를 졸업했다.

두 사람은 이듬해인 1952년 육사 제11기(정규 육사 1기) 동기생으로 다시 만난다. 생도 시절 전씨는 축구부에서, 노 전 대통령은 럭비부에서 활동했다. 전 전 대통령은 전 대통령이 1959년 김옥숙 여사와 결혼할 때 사회를 봐줄 정도로 노 전 대통령과 돈독한 사이였다.

전 전 대통령은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 보안사령관 등을 지냈고, 이 자리를 노 전 대통령이 이어받았다. 전 대통령이 합동수사본부장 겸 보안사령관으로 12·12 쿠데타를 주도해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이 맡고 있던 9사단 병력을 중앙청으로 출동시켜 결정적인 기여를 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다. 전 전 대통령은 쿠테타를 일으킨 뒤 1981년 2월 5,277명의 선거인단이 참여하는 이른바 ‘운동장 투표’로 대통령직에 올랐다.

전 전 대통령은 취임 후 노 전 대통령에게 군을 떠나 전두환 정권에 합류하자고 권했다. 노 전 대통령이 이를 따랐다. 이후 그는 노 전 대통령을 무한 신임하며 그를 13대 대통령으로 사실상 이끌었다.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그가 철권을 내려놓을 때도 노 전 대통령을 ‘정치적 후계자’로 지명해 2인자에게 권력의 바통을 넘겨준 셈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했다. 사진은 1989년 12월 31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5공 및 광주특위 합동 청문회에서 발언하는 도중 평민당 이철용 의원이 불성실한 답변을 중단하라며 질책하는 모습./연합뉴스


하지만 민주화 바람으로 탄생한 정권을 받은 노 전 대통령의 길은 달랐다. 그는 취임 이후 ‘5공 청산’이라는 거센 바람을 외면할 수 없었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요구가 빗발쳤다. 노 전 대통령은 민심이 가라앉을 때까지 조용한 곳에 가 있으라고 권고했다. 전 전 대통령은 결국 백담사에 유배되는 길을 택했다.

전 전 대통령은 백담사로 떠나기 전날인 1988년 11월 22일 밤 노 전 대통령에게 전화로 백담사 은둔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전임자의 신변을 안전하게 해주지 못해 부끄럽다. 잠시 고생스럽더라도 참고 견디면 조속한 시일 내에 어려움을 극복하고 원상으로 회복하겠다”고 달랬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역사의 심판은 피할 수는 없었다. 김영삼 정부가 탄생하자 두 사람은 12·12 쿠데타와 비자금 사건 등으로 1995년 11월 16일과 같은 해 12월 3일 나란히 구속돼 법의 심판을 받았다.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전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 노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의 중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이후 12월 당시 임기 말이던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의 정치적 합의에 따라 두 사람은 나란히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다만 두 사람은 법의 심판을 받으며 사이가 온전하기 못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은 먼저 검찰 소환에 응해 구속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노태우가 일을 그르쳤어. 그렇게 쉽게 검찰에 가는 것이 아닌데 끝까지 버텼어야지”라면서 강한 불만을 터트린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그들(5공 측 인사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통령이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하면 대통령이 아니라 독재자라는 것이 나의 철학이었다. 그런 인식 차이로 인해 전임자는 나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면서 서운해 할 수 있는 것이고, 나는 미안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회고했다.

둘의 만남은 2014년 8월13일이 마지막이었다. 전씨는 갑자기 노 전 대통령의 자택을 방문해 김옥숙 여사에게 “노 전 대통령을 좀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전씨는 병상에 누워있는 노 전 대통령에게 “이 사람아. 나를 알아보시겠는가”라고 했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노 전 대통령은 김 여사가 “알아보시면 눈을 깜빡여보시라”고 하자 눈을 깜빡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은 올해 10월 26일 떠났다. 28일 뒤인 이날 전 전 대통령도 사망했다. 신군부를 낳은 두 명의 권력자가 한 달 사이에 나란히 세상을 등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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