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기 업체에서 엔지니어로 일해온 사람들이 '독립 사업자'로서 회사와 계약을 맺었더라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A씨 등 청호나이스 소속 전직 엔지니어 2명이 낸 퇴직금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청호나이스 측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3일 밝혔다.
청호나이스에서 제품 판매와 배달·설치·애프터서비스(A/S) 등을 맡은 7년차 엔지니어 A씨와 16년차 B씨는 지난 2016년 회사와 계약을 끝냈다.
이들이 2008∼2009년부터 청호나이스와 체결한 서비스 용역 위탁계약서에는 "수탁자(엔지니어)는 위탁자(청호나이스)와 근로관계에 있지 않고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고유의 사업을 영위하는 독립 사업자"라며 "수탁자는 계약 연수와 상관없이 위탁자에게 퇴직금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돼있다.
하지만 A씨와 B씨는 회사 측이 근로기준법상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각각 3,100여만원과 1,800여만원의 소송을 냈다. 실질적으로 청호나이스에 전속돼 근로를 제공했고, 자신들은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방식으로 임금을 받는 종속적인 노동관계 속 근로자였다는 주장이다.
1심과 2심은 두 사람을 근로자로 인정할 수 없으므로 청호나이스 측에 퇴직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청호나이스가 매출 목표 설정과 엔지니어 관리·교육 등 지휘와 감독을 한 것으로 볼 수 있고, 엔지니어들이 반복적인 재계약을 통해 일한 만큼 업무의 계속성도 인정된다"고 했다.
엔지니어들은 취업규칙이나 복무·인사규정의 적용 대상은 아니었으나 회사 측으로부터 행동강령 등 다양한 규정과 지침을 통일적으로 준수하라는 요구를 받아온 것으로 파악됐다.
대법원은 엔지니어들이 업무 장비를 스스로 갖춘 점이나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를 낸 점,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점 등도 근로자성 인정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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