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국회의 시간이다. 정부의 입장과 달리 여야는 가상자산 과세 시점을 내년에서 오는 2023년으로 1년 늦추고 1세대 1주택자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을 시가 9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올리는 데 의견을 모았다. 지난해 대주주 양도세 10억 원 유지 논란에서 보듯 세법은 여야가 합의해 밀어붙이면 정부도 사실상 어쩔 도리가 없다.
예산은 다르다. 집권 여당 대선 후보가 1인당 20만~30만 원의 전 국민 일상회복 지원금 지급을 요구해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예산안에 새 비목을 넣으려면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보다 국회에서 증액을 할 때도 홍 경제부총리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내년 정부 예산안의 법정 처리 시한(12월 2일)이 가까워지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또다시 기재부 때리기에 나섰다. 이 후보는 “국민이 공직자에게 권한을 맡길 때는 그 권한을 활용해서 필요한 일을 하라는 것이다. 그걸 왜 안 쓰냐, 최대치로 써야지”라며 “당은 제 페이스대로 많이 바뀌었는데 기재부는 죽어도 안 잡히더라”고 비판했다.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는 발언의 연장선상으로 전 국민 지원금은 한발 물러섰으니 지역화폐 예산과 자영업자 손실보상 하한액(10만 원) 상향은 양보하라는 메시지다. 여당은 지역화폐 예산을 당초 책정된 6조 원에서 올해 규모(21조 원) 이상으로 대폭 증액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반면 정부는 10조 원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어서 진통이 불가피하다.
당정 충돌 관계에서 ‘10전 1승 9패’ 또는 ‘백기를 들었다’ 식으로 왈가왈부해도 올해 따지고 보면 홍 부총리가 거듭 완승을 거뒀다. 올해 가구소득 하위 88%에 1인당 25만 원의 국민지원금 지급을 결정할 때도 사표를 꺼내다시피하며 보편 지원을 막았고, 이번 이 후보의 전 국민 지원금 갈등 때도 ‘재정 원칙과 기준’을 고수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워도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나 같은 공무원에게 줘서야 되겠느냐’는 신념과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 그리고 이제 취임 3년을 앞둔 맷집이 배경으로 꼽힌다.
대선을 100일 앞둔 시점인 만큼 여당은 604조 4,000억 원 규모의 내년 예산을 더 늘리자고 압박 수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에도 소상공인 재난지원금을 주기 위해 10년 만에 국회에서 총지출을 순증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내년 시작과 동시에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 재차 전 국민 지원금 지급을 밀어붙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예산안 심사 막바지 단계는 국회의 시간이자 홍 부총리의 시간이다. 추가 세수가 예측보다 더 들어오면 ‘공돈’처럼 생각해 더 쓸 게 아니라 내년에 발행하기로 예정된 적자 국채 규모를 줄이면 된다. 후대 역사에서 최장수 경제부총리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이번 주 결단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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