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관세청은 ‘한국형’ 컨테이너 해상 운임 통계를 처음 선보였다. 수출신고서에서 추출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우리나라에서 출발하는 컨테이너의 비정기·건별 계약과 장·단기 계약 운임을 통계화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출발하는 선박을 기준으로 한 운임 지표는 없었다. 이 때문에 수출 기업들은 중국발(發) 운임 통계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 등 외국 지표나 분기별로 발표되는 선사별 운임 자료 등을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한국과 중국 선박의 항로 차이가 커 국내 기업이 해외 지수를 참고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형 운임 통계가 만들어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애로 사항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그 어느 때보다 물류의 흐름을 파악하는 게 중요해졌습니다. 한국형 해운 통계를 통해 국내 수출입 기업과 해운사들이 더 정확한 운임을 알 수 있게 된 만큼 앞으로 수출입 경영계획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임재현(사진) 관세청장은 지난 28일 서울 강남구 서울본부세관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관세청에 접수되는 하루 수출입 신고 건수만 11만 8,000건이고 여기서 비롯되는 정형·비정형 데이터는 수백만 건에 달한다”면서 “이렇게 축적된 빅데이터를 인공지능(AI)을 통해 분석할 경우 우리 경제에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관세청이 글로벌 물류대란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관세청이 보유한 빅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물류 출구를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물품 통관을 처리하는 데 머물렀던 전통 세관의 역할에서 벗어나 국가 경제 운용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직접 찾아 나선 것이다. 임 청장은 단순 통관 업무를 넘어 가상자산을 이용한 환치기나 마약 수사까지로 관세청의 업무 범위를 넓혀가겠다고 강조했다.
임 청장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새로운 운임 통계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관세청은 2019년 1월 이후 최근 3년간의 컨테이너 월별 운임 통계를 ‘수출입 무역 통계 홈페이지’에 우선 공개해 민간 기업이 운임 추이를 예측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방침이다. 내년에는 수입 컨테이너 운임과 항공 수출입 운임 통계를 새로 개발해 공표할 계획이다. 임 청장은 “관세 행정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데이터는 전산화돼 있어 빅데이터 분석으로 얻을 수 있는 새로운 통계가 많다”면서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물류대란으로 어려움을 겪는 수출입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뛰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직접구매(직구)가 늘고 있는 점을 감안해 관련 데이터를 정기적으로 공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상품이나 국가·성별로 소비 동향을 분류해 공개하는 형태다. 임 청장은 “최근 아마존 등을 통한 해외 직구가 많이 늘었는데 관련 데이터가 공개되면 해외 직구 시장 진입을 노리는 신생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서울대 소비자학과와 협업해 해외 직구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청장은 ‘기업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포털 사이트도 연내 개설하겠다고 했다. 이를 통해 관세청의 수출입 데이터와 중소벤처기업부의 기업 지원 이력을 한데 모은 뒤 AI 분석을 거쳐 민간 기업에 가장 적절한 지원 사업을 제안할 계획이다. 품목 국가별 수출입 동향을 인포그래픽 형태로 구성한 ‘트렌드 리포트’도 게재된다.
관세 행정 역량을 개선하는 데도 빅데이터를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임 청장은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기술적인 역량을 갖춘 전담 조직에서 이를 분석해 다시 현장에 제공해 업무에 활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면서 “체납 처분을 회피하려고 타인 명의를 도용해 우회 수입한 업체의 거래 관계망을 분석해 2,000억 원이 넘는 불법 외환 거래를 적발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도 거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암호화폐 사용이 점차 늘면서 관세청의 업무 범위도 더욱 확장되고 있다. 임 청장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서울 소재 아파트 매매 자금의 조달 관련 기획 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조사 결과 관세청은 환치기 등 불법 자금으로 아파트를 구매한 외국인 17명(16채, 176억 원)과 9개의 환치기 조직을 적발해 검찰에 송치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이용한 신종 환치기 수법이 이번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는 것이다. 실제 시가 11억 원 상당의 아파트를 매수한 환치기 조직은 중국 현지에서 특정 계좌로 위안화를 입금한 뒤 암호화폐를 매수해 한국에 있는 조직원에게 전송했다. 한국 내 조직원은 이를 다시 원화로 매도해 현금화하는 방식으로 총 4억 5,000만 원을 국내로 밀반입했다. 임 청장은 “가상자산 환치기를 통한 외국인의 국내 아파트 불법 취득 사실을 적발한 최초의 사례”라며 “앞으로도 관계 부처와의 협업을 통해 국내 부동산을 구매하는 외국인의 불법 자금을 계속 단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맞춰 관세청은 한국은행으로부터 외국인(비거주자)의 부동산 취득 자료를 넘겨받아 거래에 이용된 자금의 불법성 여부를 상시 감시할 방침이다. 한은이 시중은행들로부터 비거주자의 부동산 취득 신고 자료를 매달 취합해 관세청에 전달하는 형태다. 가상자산 대응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통한 관계 부처 간 공조도 강화하기로 했다. 임 청장은 “예를 들어 누군가 50억 원짜리 건물을 샀는데 자금 출처가 불분명하다면 불법 조성된 자금일 가능성이 있으니 확인하겠다는 취지”라며 “한은의 자료를 확보하면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 구입 자금에 대한 불법성 여부를 상시 점검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마약 사건 수사도 최근 관세청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다. 검찰청법 개정에 따라 마약 사건에 대한 세관의 수사 범위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5년간 국내 마약류 압수량의 77%를 관세청이 확보했다. 최근에는 선박을 이용한 해상 화물 집중 단속을 실시해 호주로 밀반출하려던 필로폰(메트암페타민) 404㎏을 적발하기도 했다. 이는 1,350만 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양으로, 국내 밀반입 사례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임 청장은 “국내에 유통되는 마약류 대부분은 외국에서 반입되고 있다”며 “관세청은 관세 국경의 최일선에서 마약 단속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뛰어난 수사력에 비해 단속 현장의 여건이 녹록지 못한 현실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관세청의 단속 인력은 60여 명에 불과하다. 경찰과 검찰이 마약 수사에 각각 1,100여 명과 280여 명을 투입하는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국내 마약류 사범은 지난해 기준 1만 8,050명으로 1년 새 12% 넘게 늘어났다. 코로나19 이후 국가 간 항공 운항 급감으로 과거 여행자들을 통해 들여왔던 마약 밀수 방식이 특송과 국제우편 형태로 바뀌면서 세관 당국의 부담감은 더욱 커졌다. 임 청장은 “올해부터 마약 수사 범위가 대폭 확대됐지만 정작 인력은 하나도 늘지 않았다”며 “관세청의 마약 수사 인력 증원과 과학 장비 도입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관세청은 급증하는 전자 상거래 추세에 맞춰 통관 시스템 개편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 전자 상거래 수출 건수는 2018년 961만 5,000건에서 2020년 2,688만 6,000건으로 불과 2년 새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해 전자 상거래 수출 전용 시스템인 수출 목록 변환 신고 시스템을 개통한 데 이어 내년에는 통관 비용 절감을 위해 수출 기업이 직접 수출 신고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할 계획이다. 현재는 배송을 담당한 특송 업체와 관련 관세사를 통해서만 수출 신고가 가능하다. 또 간편한 관세 환급을 위해 자동 간이 정액 환급 기능도 추가한다. 임 청장은 “수출 신고부터 관세 환급 신청까지 전자 상거래 수출 통관 대부분의 과정이 자동화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 수출입 업체에 대한 지원도 강화한다. 관세청은 지난해 2월부터 올해 10월까지 코로나19 피해 기업 3,486개를 선정해 약 9조 5,000억 원의 세정 지원을 한 바 있다. 지원 내용을 살펴보면 수입부가세 납부 유예로 자금 조달의 부담을 덜어주고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체납자에 대해서는 체납 처분을 유예하고 있다. 임 청장은 “코로나19에 따른 직접 피해에 더해 물류 환경의 변화로 중소 수출 기업은 큰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며 “자금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수출 지원 유관 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수출 지원 사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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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서울 △1987년 연세대 경제학과 △1990년 행시 34회 △2015년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법학 박사 △2013년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2015~2018년 기획재정부 조세총괄·소득법인세·재산소비세정책관 △2019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2021년 3월~ 관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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