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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의 그림] 숲, 달, 빛, 구름과 비…자연을 품은 공공미술의 향연

■광명역 주거·문화복합단지 유플래닛

건축·예술 협업으로 새로운 공간경험 제공

꿈을 자극하는 이동훈의 '오늘.지금.달'

샛노란 구름이 신비로운 미미정의 '레인'

시간의 흐름·계절 변화 구현한 색유리 등

'오늘의 날씨' 주제 친환경 작품들 눈길

미미정의 ‘폴른 펜스-레인’




꽤 많은 사람들이 ‘로비의 그림’은 완공된 건축물의 ‘남는’ 공간에 ‘적당한’ 예술품을 ‘채워 넣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건 뭐랄까, 잘 차려 입은 후 옷에 맞춰 구두나 스카프를 택하는 것과 비슷한 태도로 예술품을 대하는 듯하다. 접근 방식의 차이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각자의 대답만큼이나 제각각이다. 어떤 이에게 예술은 ‘나와 무관한 것’이며 ‘쓸데없는 허비’일 수도 있겠으나 누군가에게 예술은 ‘삶의 영감과 원동력을 주는 존재’이며 ‘일상을 더 빛나게 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구두·가방 혹은 넥타이·머플러를 먼저 정하고 그에 맞는 옷을 선택한다는 멋쟁이가 있는 것처럼.

경기도 광명시 광명역 앞 주거·문화 복합 단지 유플래닛(U Planet)은 지난 2018년 말 공사 부지 터파기 작업 때부터 건축주·조경가·아트디렉터가 머리를 맞대고 출발했다. 건축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예술 작품 설치에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적인 법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예술과 건축의 협업이 이뤄내는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고 기업 활동이 사회적으로 기여할 방법을 모색하던 윤석민 태영건설(009410) 회장의 의지가 컸다는 후문이다. 예술과 무관한 듯하지만 윤 회장은 국립현대미술관 발전 후원위원회 회원이며 매년 SBS문화재단을 통해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지원하고 있다.

이동훈의 ‘오늘 지금 달’ /사진 제공=태영건설 ⓒ김동규


광명역 바로 옆에 자리한 유플래닛의 첫 인상은 한낮에 만나는 달처럼 낯섦과 친숙함의 공존이다. 밤에 보여야 하는 달이 둥그렇게 떠 있어 생경하나 수천수만 년 한결같은 모습의 ‘그 달’이라 더 반갑기도 하다. 건물 내부로 향하는 보행로 위쪽 브리지에 지름 1.9m의 미디어 설치 작품인 이동훈의 ‘오늘.지금.달’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북반구에서 실시간으로 촬영한 달 표면을 보여준다. 지금은 해가 밝아 보이지 않지만 “지구 30개를 한 줄로 세운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달의 모습을 보여주며 보는 이들의 꿈을 자극한다.

유플래닛 내 ‘유타워’에 들어서면 스스로 샛노란 빛을 내뿜은 구름과 빗줄기를 만나게 된다. 꿈틀거리는 구름과 쏟아져 내리는 비에 대한 “인류 보편적인 경험을 통해 결국 우리 인간은 모두가 동일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고자” 한 재미 한국계 작가 미미정의 ‘폴른 펜스-레인’이다. 나일론 끈을 소재로 뜨개질처럼 직조해 제작한 작품이다. 형광을 띠는 노란색을 택해 구름과 빗줄기가 태양 같은 빛 덩어리로 느껴지는 묘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우연찮게 로비 안쪽에 걸린 차승언 작가의 ‘여섯 개의 일’ 또한 실로 짜서 만든 작품이다. 다만 차 작가의 직조는 노동의 신성함을 생각한 ‘기도’ 같은 작업이다. 염색의 흐름, 얼룩과 번짐이 한 폭의 추상화를 그려냈다.



차승언 '여섯 개의 일'


이곳 유플래닛 로비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어는 ‘오늘의 날씨’다. 공공 미술에 대한 전문성으로 유명한 홍보라 아트디렉터가 3년간 이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홍 디렉터는 “퍼블릭(public), 즉 공공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새기며 지루하고 뻔한 느낌이 아닌 우리를 환기시키고 재정의할 수 있는 작품들을 구상했다”면서 “작품을 통해 새로운 공간 경험을 누리고 이를 위해 신재료·신기술, 친환경 소재와 공법을 조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건축가그룹 SoA의 ‘레인 체인 포레스트(Rain Chain Forest)’


건축가그룹 SoA의 보행로 설치 작품 ‘레인 체인 포레스트(Rain Chain Forest)’에 사용된 UHPC라는 강화 콘크리트가 그 과정에서 만난 신재료 중 하나다. 지붕 위 빗물이 여기저기 튀지 않고 한곳에 떨어지도록 한 ‘레인 체인’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인데, 맑은 날에는 희고 구불구불한 형태 그 자체로 눈이 즐겁지만 비 오는 날에는 툭툭 떨어진 빗방울이 또르르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 새로운 재료로, 얇은 기둥 위에 널찍한 지붕을 올리는 구조를 완성하기까지 작가들은 수백 번의 실패를 견뎌냈다고 한다.

AVPD의 '라이트 스피어' /사진제공=태영건설 ⓒ김동규




중앙 광장에 놓인 높이 8m 기둥에 반원들이 달린 조형물은 북유럽 작가그룹 AVPD의 ‘라이트 스피어’다. 마치 깃발이 걸려 있어야 할 자리를 차지한 것만 같은 이 작품은 단순한 형태로 초현실적인 미감을 자랑한다. 육중한 금속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반원형의 날개들이 바람에 따라 움직인다. 낮에는 태양 빛을 반사하고 밤에는 LED 조명이 반짝인다. 태양과 바람에 반응하는 작품을 통해 우리가 항상 보이지 않는 환경의 영향 속에 살고 있음을 자각하게 한다. 검은 큰 원 위에 작은 흰 원이 놓인 이상혁 작가의 ‘빛이 닿는 곳’과 대구를 이룬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그림자를 느끼며 바쁜 일상 속에서도 이따금 하늘을 올려다보고 옆 사람을 바라보기를 권하는 작품이다.

덴마크 작가 랜디&카트린의 '숲' /사진제공=태영건설 ⓒ김동규


중앙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5층 옥상 정원으로 올라가 보자. 빌딩 숲 한가운데 북유럽의 초록 숲이 자리 잡았다. 덴마크의 작가 듀오 랜디&카트린의 ‘숲’이다. 나무둥치와 잎을 간략하게 표현한 기하학적 작품인데, 금속 기둥 위에 높이가 서로 다른 사각뿔이 꽂혀 나무들을, 숲을 이룬다. 이른바 ‘북유럽 감성’이라 불리는 자연에서 찾아낸 다양한 녹색의 변주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숲(forest)은 쉼(rest)을 위한 공간이므로 방문객은 작품 아래에 잠시 앉아 쉴 수도 있다.

호르헤 마녜스 루비오의 '솔(SOL)'


이게 끝이 아니다. 좀 더 돌아 다녀보자. 아파트가 보이는 쪽 옥상 정원에서, 잔디 언덕 위로 불시착한 초록 유리를 만날 수 있다. 작가 호르헤 마녜스 루비오는 2005년 5월 나사의 화성 탐사 로봇 스피릿이 포착한 화성의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붉은 행성으로 알려진 화성의 노을은 놀랍게도 푸른빛이었던 것이다. 화성의 노을 색을 닮은 직육면체의 거울 표면들이 주변의 고층 건물들을 비추며 지평선이 보이지 않는 도시 한가운데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이야기한다. 홍 디렉터는 “잔디밭도 작품의 일부인데, 작가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속도를 늦추고, 모이고, 사색하며 사람과 우주,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회복하길 바란다고 전했다”고 소개한다. 작가는 유럽의 우주산업 관련 업체들의 비영리 연합체인 일명 ‘유로스페이스’의 일원이다.

호르헤 마녜스 루비오의 '솔(SOL)'


작가그룹 김에김의 ‘잔향-리버브’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마주하게 되는 색유리들은 작가그룹 김에김의 ‘잔향’이다. 복도를 걸어가면서 순간순간 변하는 빛과 색을 경험할 수 있다. 흐르는 음악을 감상하며 잠시 앉아 쉬어도 좋겠다. 종종 계절을 잊게 하는 빌딩 속 일상을 위해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를 빛으로 느끼게 한 곳이다. 매일 오전 9시와 정오, 오후 7시에 김다움 작가의 사운드 작업을 들을 수 있다.

이 외에도 푸른빛의 기운을 내뿜는 야외 설치 작품인 정성윤의 ‘골디락스’, 정지된 벽면이지만 원기둥 형태의 아크릴렌즈가 굴러다니며 새로운 장면을 펼쳐보이게 한 T타워 브리지의 김치앤칩스 작품 ‘옵티컬 레일’, 따뜻한 공기와 차가운 공기를 상징하는 주황색과 파란색 타일 위를 거닐게 하는 홍승혜의 바닥 설치 작업 ‘날씨걷기’, 펄펄 끓는 금속을 차가운 강물에 부어 찰나의 형상을 포착하는 에이 카센의 조각 등 놓치기 아까운 작품들이 곳곳을 채우고 있다.

바래(BARE)의 작품 ‘당신의 날씨’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T타워 2층에 매달린 바래(BARE)의 작품 ‘당신의 날씨’는 꼭 챙겨봐야 한다. 종종 사람의 감정을 날씨에 비유하고는 하는데, 이를 실제 구현한 작업이다. 작품 앞에 마주 선 관람객의 감정을 인식한 데이터 값이 작품의 빛깔과 움직임을 변하게 한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들뜨고 설렌 마음의 날씨는 짙은 푸른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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