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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인정받은 기술…남아공서 컨테이너로 쓸어갔죠"

[대한민국 명장을 찾아서] 최태화 남해공예사 대표

19살 때부터 55년 간 한 우물

따로 분리돼 있던 나전칠기 공정

국내서 유일하게 하나로 통합해

협저태·상감 등 고난도 기법 이용

각종 공예 공모전서 28회나 수상

한때 사우디·스페인 등서도 수입

최태화 남해공예사 대표가 문·무·왕실을 표현하는 동물들을 소재로 만든 흉배문양 삼층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호랑이가 포효한다. 그 위에는 네 마리 학이 춤을 춘다. 이들을 아래에 두고 두 쌍의 봉황이 신비한 기운을 내뿜는다. 무(武)와 문(文), 왕실을 각각 대표하는 세 종류의 동물들을 층별로 품은 ‘흉배문양 삼층장’. 반짝이는 나전(螺塡)과 주칠(朱漆), 검은색 옻칠이 서로 빛을 어우르며 눈부신 무지개를 그린다.

흉배문양 삼층장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 주인공은 지난 2017년 대한민국 나전칠기 명장으로 선정된 최태화(74) 남해공예사 대표. 10일 서울 역촌동 사무실에서 만난 최 대표는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5~6개월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며 “나전칠기를 만드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비싼 것이 결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나전칠기는 원래 나전을 담당하는 기술자와 칠 전문가가 협업을 통해 만들어낸다. 공정이 분리돼 있다 보니 나전을 하는 이는 칠을 못했고 칠을 하는 사람은 나전을 몰랐다. 최 대표 역시 처음에는 칠을 전문으로 했다. ‘두 가지를 함께 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혼자 공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개 붙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때마침 놀고 있는 공장을 찾았죠. 이 공장에서 만든 작품을 시중에 내놓았더니 반응이 너무 좋더군요.” 나전과 칠의 융합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지금도 나전과 칠을 같이 하는 전문가는 그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한다.

최태화 대표가 나전칠기 기초 작업으로 틀 위에 옷칠을 섞은 흙을 바르는 ‘토회질’을 하고 있다.




그가 나전칠기의 세상에 들어섰을 때 나이는 19세.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입 하나 줄이겠다며 서울로 올라와 나전칠기 공방에 취직, 18년을 보냈다. 1986년에 남해공예사로 독립한 후에는 각종 대회에서 수상을 하며 이름을 날렸다. 2010년 한국나전칠공예대전 금상, 2012·2016년 국제전통예술대전 우수상, 2014년 한국문화재기능인작품전·대한민국신미술대전 최우수상 등 각종 공모전에서 28회나 입상했다. 해외에서도 유명세를 탔다. 그는 “2002년 코엑스에서 전시회를 할 때 스페인과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에서 작품들을 대거 수입해갔다”며 “남아프리카공화국 바이어는 ‘최고의 나전칠기’라는 찬사와 함께 컨테이너 2개 물량을 주문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최 대표가 한국 최고의 나전칠기 명장으로 꼽히는 이유다.

최태화 대표가 만든 건칠 장구. 건칠이란 삼베에 옻칠을 입히는 작업을 수십 번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나전칠기를 만드는 과정은 55년 외길을 걸어온 그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틀을 만들 때 터짐이나 비틀림을 막기 위해 삼베를 싸고 옻칠을 하는 작업(협저태·夾紵胎)만 수십 번. 이 과정이 끝나고 나면 얇게 가공한 자개를 그림 선에 따라 붙이고 또 칠하기를 반복한다. 표면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숯을 이용하고 다시 광을 낸 후 칠을 더한다. 이 모든 과정이 오로지 손으로만 이뤄진다. 비장의 기술도 가세한다. 그는 “여기서 만드는 모든 작품은 상감기법을 사용한다”며 “자개가 칠 아래로 파고 들어가기 때문에 가구 표면이 울퉁불퉁하지 않고 반질반질한 것이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아무리 간단한 작품이라도 석 달 이상 걸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 큰 어려움은 전통 공예 산업 자체가 쇠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때 나전칠기는 부의 상징이었다. 작품을 사려는 고객들이 줄을 서서 대기할 정도였다. 아파트가 우리 삶의 중심에 들어오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는 “아파트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가구 놓을 자리가 사라졌고 특히 붙박이장이 대세를 이루면서 전통 장들이 밀리기 시작했다”며 “디자인의 변화, 비싼 가격도 쇠퇴의 한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선택한 것은 ‘고급화’. 희소성을 무기로 손님들이 호감을 가지는 작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는 “나전칠기의 경우 너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며 “대량생산을 하면 가격을 싸질 수 있지만 상품 가치가 떨어지고 조잡한 물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정직하게 누구나 갖고 싶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좌우명으로 두고 있다. 이 신념을 이어나갈 사람은 자녀들이 아니라 넉 달 전 가르침을 받고자 직접 찾아온 이효준(54) 씨다. 이 씨는 “장인들의 기술은 단기간이 아니라 반세기 이상 축적된 결과물”이라며 “기술도 쌓으면 예술이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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