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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번식장에서 구조된 248마리…이젠 꽃길만 걸을까 [지구용]

음식물 쓰레기 먹으며 뜬장서 3~8년 '번식견' 생활

발정제·자궁 수축제 맞으며 끊임없는 출산 강요당해

대피소 옮겼지만 유선종양·구강질환 등으로 고통

펫샵 '인기 품종'들...번식장 불법 운영 등 처벌 미미

남양주 불법 번식장의 뜬장에 갇혀 있었던 아이들. /사진=위액트




이번 겨울은 그리 춥지 않아서 좋다고 생각하며 안온한 일상을 보내던 지난해 12월 초. 경기도 남양주의 한 ‘농장’에서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번식견 248마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불법 번식장 소유주들과의 싸움이에요. 사단법인 위액트 활동가들은 번식장의 개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기 위해 2주 넘게 밤낮으로 농장을 지키고 소유주들을 설득했어요. 방송사 카메라맨에 남양주 공무원 10여명까지 가세했지만 소유주들은 참 뻔뻔했어요(영상은 여기). 때로는 고성이 오가기도 했죠.

남양주 불법 번식장의 뜬장에 갇혀 있었던 아이들. /사진=위액트, 일러스트=정유민 디자이너


위액트 활동가들이 그래야만 했던 이유는 간단해요. 무허가 번식장의 상태가 끔찍했기 때문이에요. 번식장 소유주들은 개들이 끊임없이 새끼를 낳도록 발정제와 자궁수축제(옥시토신)를 주사했고, 새끼를 낳다 자궁이 탈장된 개들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뒀어요. 강아지들은 근친 교배 때문에 유전병에 걸린 채로 태어났고요. 소유주들은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개들에게 음식물 쓰레기를 밥으로 먹이기도 했어요. 기생충, 피부병, 이빨의 절반 이상을 뽑아야 될 만큼 심각한 구강질환이 너무나도 흔했고요.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난 번식장 아이들이 머물고 있는 대피소.


위액트 인스타그램에서 그동안의 전쟁 같은 상황을 알게 된 에디터는 뒤늦게 나마 남양주 대피소 봉사에 참여했어요. 대피소는 번식장에서 구조한 아이들이 임시로 지내는 곳이에요. 훨씬 나은 환경에서 치료와 돌봄을 받고 있어요.

사람을 반기는 번식장 아이들


남양주 대피소에는 생각보다 적은 수의 아이들만 남아 있었어요. 불법 번식장에서 248마리를 구조한 후 다른 동물단체와 임보(입양 전 임시보호)자들이 132마리를 보호 중이고, 훈련소나 병원에 있는 아이들을 제외한 33마리만 대피소에서 보호 중이라는 함형선 위액트 대표님의 말씀. 구조 직후 태어난 아이들, 반대로 구조 직후 사망한 아이들도 있고요.

봉사자를 반기는 대피소의 한 아이.


강아지들 대신 감사드리고 싶을 만큼 대피소의 환경도 좋았어요. 등유 난로를 넉넉히 피운 덕에 따뜻했고, 사료나 배변 패드 같은 물품도 넉넉히 준비돼 있었어요. 불법 번식장의 참담한 실태를 본 수많은 분들이 십시일반 도와준 덕분이죠.

그리고 놀라운 점. 나쁜 사람들 때문에 번식장에서 평생 고통받았을 아이들이지만, 봉사자들의 손길을 반가워하는 녀석들이 생각보다 많았어요. 봉사자들도 자연스럽게 쓰다듬어주긴 했지만 사람이 없는 밤에는 더 외로워할까봐 걱정스럽기도 했어요. 얼른 좋은 반려인을 만나길 바라며 열심히 아이들의 그릇을 씻고 물과 사료를 날랐어요.

보이지 않아 더 무서운 ‘속병’


활발하고 기운 좋아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함 대표님께 말씀드렸어요. “아이들이 생각보다 훨씬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라고요. 그랬더니 “저렇게 건강해 보여도 다들 속병이 심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짧으면 3년, 길게는 8년 동안 새끼를 낳는 도구로만 이용됐던 아이들이 결코 건강할 리가 없는 거죠.

남양주 불법 번식장의 살풍경한 모습.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번식장 구조 직후의 개, 번식견들에게 쓰인 옥시토신 등 주사제와 주사기·각종 약품, 번식장 뜬장의 더러운 환경. /사진=위액트


여아들은 주로 유선종양(사람의 유방암과 비슷)을 앓고 있대요. 발정이 시작됐지만 중성화하지 않은 여아들에게서 주로 발견되는 병이라고. 특히 과도한 호르몬 분비를 위해 자궁수축제(=옥시토신)와 발정제를 강제로 맞는 번식장 아이들이 많이 걸린대요. 낳자마자 새끼를 빼앗겨서 모유가 그대로 굳어버리는 것도 이 병의 원인이고요.

번식장에서 구조된 아이들. /사진=위액트


대피소의 아이들은 다들 한 눈에 봐도 ‘품종견’이었어요. 푸들, 말티즈, 포메라니안…펫샵에서 잘 팔리는 ‘인기 소형견’들요. 에디터는 결심했어요. 펫샵에서 동물을 사려는 사람을 본다면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며 말리기로요.

비포 앤 애프터


유기동물에 관심 있는 용사님들이라면 잘 아실 거예요. 길에서 생활할 때(비포)와 반려가정을 찾은 후(애프터)의 얼굴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요. 불안하고 경계하는 얼굴이 순식간에 웃음으로 가득 찬다는 사실을요.

그동안 남양주 대피소에 1,500여명의 봉사자가 다녀갔대요. 덕분에 대피소의 아이들도 표정이 밝아졌고 특히 임보 가정으로 가거나 해외로 입양간 아이들은 몰라보게 달라졌어요. 아마 남양주 대피소도 수 개월 이내로 문을 닫을 수 있겠죠.

번식장에서 구조되기 직전의 오트와 임보 가정에서의 오트. 표정이 확 달라졌어요. /사진=위액트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에요. 함 대표님도 “그때쯤이면 또 다른 아이들을 구조하고 있겠죠?”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이유에요. 현재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무허가 번식장 운영에 대한 처벌은 무거워봐야 벌금 500만원이에요. 강아지 한 마리로도 수십, 수백만 원의 수익을 내는 업주들이 코웃음을 칠 만한 수준이죠. 게다가 과거 처벌을 받았더라도 배우자나 다른 가족의 이름으로 다시 허가를 받는 꼼수도 만연하고요. 전국의 개, 고양이 불법 번식장 숫자는 지금 제대로 파악조차 안 되고 있대요.

허가를 받은 번식장은 그나마 법적인 시설 기준, 위생 기준 등을 따르긴 하지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어요. 위액트의 조문영 활동가님은 “불법과 합법의 경계도 모호하고 합법 번식장이라 해도 동물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운영되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고 안타까워하셨어요.

그래서 우리도 꾸준히 정치인들을 독촉해야 해요. 동물보호법을 다시 개정해서 더 엄격히 처벌할 수 있도록, 장기적으로는 번식장이란 끔찍한 공간이 사라질 수 있도록요. 그리고 펫샵이나 브리더 역시 사라질 수 있도록 가족, 친구, 지인들을 설득해야 할 거고요. 용사님들도 힘을 모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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