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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담] 이미 갈라진 국민을 대선철에만 통합할 수 있나요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文, 종교지도자들 만나 "선거 거꾸로 가 걱정"

朴사면, 신년사 등 최근 '국민 통합' 연일 강조

박정희 고향도 찾고 北미사일에도 대선 언급

尹 이탈표 李엔 안가...비호감 경쟁에 安만 ↑

沈은 칩거...지지층만 챙긴 文도 분열엔 책임

반성했지만, 화합 쉽잖아...일단 중동 순방길

윤석열(왼쪽)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재명(오른쪽)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3일 서울경제신문 주최로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본관 앞에서 열린 '2022 증시대동제'에 참석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 선거를 50여 일 앞둔 상황에서 갑자기 ‘국민 통합’을 연일 강조하고 나섰다. 지난해 말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 때를 시작으로 올해 신년사, 종교지도자 간담회 등에서도 국민 통합을 계속 거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 스스로도 통합을 못 해냈다며 반성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는 등 그 어느 때와도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등 유력 주자들이 전과, 가족 문제, 말 실수, 선거대책위원회 내홍 등 각종 구설에 휩싸이면서 이를 둘러싼 국민들 간 반목을 우려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극단적인 진영 정치가 심화되면서 제3 지대에 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지지율이 불현듯 급등하는가 하면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최대 위기를 맞았다. 문제는 현 진영 정치 기승에 문 대통령 본인의 책임도 적잖다는 점이다. 국정운영 과정에서 5년 내내 지지층 의견만 지나치게 우선한 탓에 현 정권 지지·심판 여부가 이번 선거의 주요 기준점이 됐을 정도다. 청와대가 뒤늦게 중도·보수를 포용할 정치적 카드를 더 꺼내더라도 이 후보와 민주당이 통합 효과를 온전히 누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종교 지도자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文 “선거 거꾸로 가서 걱정”…연말연시 ‘통합’ 수차례 강조

12일 문 대통령은 원행 조계종 총무원장, 류영모 한교총 대표, 이홍정 기독교 교회협의회 총무, 이용훈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나상호 원불교 교정원장, 손진우 성균관장, 송범두 천도교 교령, 이범창 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문덕 불교종단협의회 수석부회장, 정순택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등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나누면서 국민 통합에 힘 써 달라고 신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한 가지 더 욕심을 부린다면 우리나라 민주주의에서 남은 마지막 과제가 국민들 사이의 지나친 적대와 분열을 치유하고 통합과 화합의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당연히 정치가 해냈어야 할 몫이지만 저를 포함해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반성했다. 이어 “오히려 선거 시기가 되면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며 “통합의 사회, 통합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종교 지도자들께서 잘 이끌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대선 정국에 이례적으로 ‘선거’라는 말을 직접 거론한, 무게 있는 발언이었다. 이에 원행 스님은 참석자들을 대표해 “금년에 중요한 선거가 있다. 국민들이 분열되지 않도록, 상생할 수 있도록 종교 지도자 여러분들이 함께 힘을 합칠 것”이라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이 최근 국민 통합을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24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전격적으로 결정하면서 “이번 사면이 생각의 차이나 찬반을 넘어 통합과 화합, 새 시대 개막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1월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새해 인사에서는 “나라 안에서는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국민과 함께 미래의 희망을 다짐하는 선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고, 1월3일 발표한 신년사에서는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적대와 증오와 분열이 아니라 국민의 희망을 담는 통합의 선거가 됐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같은 날 송영길 민주당 대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각계 인사들과 가진 화상 신년 인사회에서도 “우리 모두 더욱 통합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월북 사태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통신 조회 논란 등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1월11일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고향인 경북 구미도 찾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구미형 일자리 사업장인 LG BCM 공장 착공식에 참석해 “지역 청년들이 자라난 곳에서 꿈을 펼치게 될 것”이라며 “정부 역시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공언했다. ‘통합’을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문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직후 보수의 중심지로 달려갔다는 것 자체가 화합의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왔다. 같은 날에는 북한의 잇딴 미사일 발사를 두고 “대선을 앞둔 시기에 우려가 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북풍(北風)’에 선거 민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걱정하는 발언이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통령선거 후보. /서울경제DB


잦은 선거 언급 이례적…安 급등 속 李 표 확장 한계

청와대 측은 최근 문 대통령의 발언이 정치적으로 확대 해석되는 것을 일단 경계하는 분위기다. 국가 위기 상황과 임기 말을 맞아 당연히 강조해야 할 철학일 뿐이라는 태도다.

다만 문 대통령이 통합을 말하면서 지속적으로 ‘선거’를 언급하는 건 분명 이례적이다. 이 후보의 표 확장성 문제와 여야를 막론한 ‘편 가르기’ 발언들을 의식한 행보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후보는 민주당 역사상 첫 대구·경북 출신 대선 주자이기도 하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12일 성명을 내고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면 최대의 위협이 될 것”이라며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문 대통령은 선거 걱정이나 한다”고 비난했다.

실제로 올 초 윤 후보가 갖은 악재를 겪으며 내리막을 걷던 중에도 이 후보 지지율은 30%대 중후반 수준에서 횡보했다. 윤 후보에게서 이탈한 중도·보수층은 이 후보에게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다. 대신 안 후보가 10~15%까지 지지율을 높이며 3자 구도를 형성했다. 이 후보의 현 지지율은 40%대 초반에 달한 문 대통령 지지율보다도 여전히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중도층이 윤 후보와 안 후보 사이에서만 움직이는 것은 물론, 문 대통령 지지자들조차 이 후보를 모두 지지하지 않는다는 징표다. 12일 숨진 채 발견된 고(故) 이병철씨 역시 골수 ‘친문재인’ 성향의 민주당원이었지만 이 후보에 대해서는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제기할 정도로 반대 입장이 뚜렷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보다 더 선명한 이 후보의 등장으로 지지율이 쪼그라든 심 후보는 12일 돌연 선거 일정을 중단하고 칩거에 들어갔다. 정의당 선대위는 13일 일괄 사퇴했다.

중도 확장이 여의치 않자 송영길 대표는 급기야 ‘이재명 탄압론’까지 꺼내 들었다. 송 대표는 11일 MBC ‘뉴스외전’에서 “이 후보는 문재인 정부에서 탄압을 받던 사람”이라며 “거의 기소돼서 죽을 뻔했다. 장관을 했느냐, 국회의원을 했느냐”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같은 당 소속의 김종민 의원, 윤건영 의원,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은 적절치 않은 발언이라고 앞다퉈 반박했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여야 대립을 넘어 여권 내 균열까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9월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 /문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국민 분열엔 대통령도 책임…임기 말 통합 쉽잖아

사실 근래 국민 분열 양상에는 문 대통령 본인의 책임도 크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적폐청산 작업을 임기 중반까지 이어간 데다 임기 후반부에도 검찰·법원·언론·의사 등 특정 집단과의 싸움을 그치지 않은 점 때문이다. 2019년 ‘조국 사태’는 그야말로 국론 분열의 절정이었다. 윤 후보와 최재형 전 감사원장,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 등 현 정부 출신 인사 상당수는 아예 자기 손으로 이 정권을 교체하겠다며 야권 대선 주자로 뛰어나왔다.

부동산 규제, 대일(對日) 투쟁, 종전선언 등 각종 정책을 추진할 때도 현 정부는 그것이 맞든 틀리든 충성 지지층의 현실 판단과 철학을 늘 앞세웠다. 여성가족부 존폐 문제로 다시 부각한 20~30대 남성들의 페미니즘 거부감도 이전 정부 때까지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아니었다. 이 사안은 남녀 문제를 떠나 이제 세대 문제로도 번졌다. ‘장기간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 ‘(폭염 때 쓰러진 의료진이) 의료진이라고 표현됐지만 대부분이 간호사들이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등 2020년 9월2일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문 대통령이 SNS에 올린 간호사 격려 글은 어느새 ‘갈라치기’ 소통의 전설이 됐다. 대통령은 이를 통해 역대 어느 지도자보다 높은 임기 말 지지율을 얻었지만 나머지 국민들은 소외감을 얻었다. 대통령이 단순하게 “이제 통합하자”는 말로 해결하기엔 5년 간 누적된 피로감이 너무 크다는 얘기다.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 가석방, 박 전 대통령 사면 등 대선을 목전에 두고 이뤄진 문 대통령의 화해 손짓도 그 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진영 간 불신이 극에 달하면서 이 부회장 가석방 이후엔 추가적인 사면 여부가, 박 전 대통령 사면 뒤엔 이명박 전 대통령 석방 여부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국민적 갈등 요인이 됐다.

나아가 문재인 정부가 남긴 대립은 각 진영 후보들의 잇딴 구설로 한층 더 증폭되고 있다. 역대 최고 수준으로 흠이 많은 후보들이 난립하다 보니 국민들도 정책보다는 상대 후보 비방에 몰입하는 양태를 보이고 있다. ‘지지할 이유’를 찾기보다 ‘지지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가 훨씬 쉬운 탓이다. 남은 건 오로지 진영논리뿐이다. 문 대통령 역시 이런 점을 감안해 반성과 우려 입장을 냈는지도 모른다.

선거 전까지 국민 화합을 꾀하려는 문 대통령의 시도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국민들 내부적으로 축적된 상호 불신과 ‘비호감 선거’ 여파가 겹치면서 실질적 성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다음 주는 숨을 고른다. 15일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순방길에 오른 문 대통령이 6박8일 간 대외 일정을 소화하는 까닭이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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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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