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럽 최대 통신사인 도이체텔레콤이 최고기술책임자(CTO) 교체를 단행했다. 지난 4년간 도이체텔레콤 CTO를 맡아온 SK텔레콤(017670) 출신의 최진성 CTO 대신 서비스 및 플랫폼 수석부사장이자 개방형 무선접속망(Open-RAN) 책임자인 압두라자크 무데시르가 기술 변화를 진두지휘한다. 오픈RAN은 네트워크 장비의 하드웨어 종속성을 탈피해 유연한 기술 진화를 가능케 하는 5세대(5G) 핵심 기술로 다양한 기업들의 수요에 대응해 통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16일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따르면 급변하는 기술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치열한 CTO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미래를 선도할 신기술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데다 블록체인·메타버스 등 신기술 변화 속도가 워낙 빨라 전문성이 높은 새 CTO에 대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기술 개발을 통한 사업 구조 혁신은 테크 기업들의 생존이 걸린 사안인 만큼 앞으로 신기술에서 전문성을 갖춘 CTO 유치 전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노동통계국이 최근 발표한 직업 전망에 따르면 2020년과 2030년 사이 CTO 고용은 11%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모든 직업 대상 고용 전망치 평균인 8%를 앞서는 수치다. 또 노동통계국은 CTO 관련 약 4만 2,400개의 일자리가 10년 동안 매년 평균적으로 생길 것으로 전망했다. 기술 혁신이 글로벌 테크 시장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면서 CTO 수요가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상위 테크 기업 최고경영자(CEO)들 역시 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차별화된 기술력 확보를 꼽고 있다. IBM기업가치연구소가 글로벌 50개국 3,000명의 CEO를 대상으로 조사해 최근 발표한 ‘2021 CEO 스터디’에 따르면 글로벌 상위 기업 CEO들이 꼽은 향후 2~3년간 가장 중요한 도전 과제(복수 응답)는 기술 인프라가 62%로 1위를 차지했다. 규제(51%), 유연 근무 환경(50%), 사이버 위협(44%) 등은 후순위였다.
글로벌 빅테크들의 흐름에 맞춰 국내에도 기존 주력 사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새로운 CTO 도입에 나서고 있다. 하드웨어 중심 기업인 LG전자(066570)는 지난해 말 인사에서 6세대(6G)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통신 분야 전문가로 CTO를 교체했고 통신 사업자인 SK텔레콤은 탈통신 사업 강화를 위해 인공지능(AI) 개발자 출신을 CTO에 앉혔다. 기술 변화 속도가 더 빠른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중심 기업들은 보다 속도감 있는 CTO 교체와 함께 ‘집단 CTO 체제’ 도입 등 새로운 실험에도 나서고 있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AI·클라우드 등 모든 산업에 적용 가능한 인프라 기술 말고도 금융·제조 등 각 영역마다 필요한 특수 기술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며 “각 산업군마다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사업화하기 위해 갈수록 전문성을 갖춘 CTO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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