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의 상승세가 둔화되고 매매 심리가 위축되면서 최근 분양 단지들의 계약금 정책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올해부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본격화되고 기준금리가 인상되면서 ‘계약금 1,000만 원 정액제’ 등 금융 혜택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17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이후 전국 분양 단지들 가운데 계약금 1,000만 원 정액제를 도입한 곳들이 잇따르고 있다. 통상 분양가의 20%인 계약금 비중을 10%로 낮추는 한편 계약 시 1,000만 원만 납부하고 1개월 뒤 나머지 계약금을 납부하는 식이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사업시행자는 계약금을 분양가의 10~20%, 중도금은 60% 이내에서 정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달 31일 입주자모집공고를 낸 경기 ‘광주 탄벌 서희스타힐스 1·2단지(172가구)’는 계약금 10%를 제시하고 계약 시 1,000만 원 및 한 달 후 나머지를 납부하도록 안내했다. 최근 미분양이 대거 발생한 대구 ‘달서 롯데캐슬 센트럴스카이(481가구)’ 역시 계약 시 1,000만 원을 내고 한 달 내 나머지를 납부하도록 하고 있다. 계약금 10%를 절반씩 나눠 2차에 걸쳐 납부하는 단지들도 있다. 경기 이천 휴먼빌 에듀파크시티(605가구)와 광주 방림 골드클래스 당첨자들은 계약금을 분양가의 5%씩 두 차례에 걸쳐 납부해야 한다.
지난해 대출이 원활하고 부동산 시장이 급랭하기 전까지는 분양금에서 계약금·중도금·잔금 비중이 20%·60%·20%였다. 하지만 최근 수분양자들이 초기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늘면서 계약금과 중도금 비중을 낮추는 단지들이 늘고 있다. 높은 분양가에 계약금 20%로 미계약이 대거 발생한 ‘송도 자이 더 스타’ 분양 이후 ‘더샵 송도 아크베이’가 계약금 비중을 10%로 낮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산 동래구 ‘래미안 포레스티지’도 청약 흥행이 예고됐지만 계약금을 20%가 아닌 10%로 책정했다. 서울에서는 계약금 10%, 중도금 40%, 잔금 50%를 책정한 단지도 나왔다. 지난달 14일 입주자모집공고를 낸 서울 강북구 칸타빌수유팰리스다. 규모가 216가구로 작은 만큼 최대한 투자 수요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2019년 분양 시장이 숨 고르기에 들어갔을 당시에도 일부 아파트 분양에서 계약금이 10%대로 내려간 바 있으며 분양 시장이 아예 얼어붙었던 2015년에는 서울 주요 핵심지에서도 계약금 1,000만 원 정액제가 도입된 바 있다. 당시 양천구 목동 힐스테이트의 경우 잔여 가구가 발생하자 기존 1차 계약금 5%를 1,000만 원 정액제로 변경하고 중도금 무이자, 발코니 무료 확장 등의 혜택을 제공했다.
다만 현재는 서울 및 수도권의 입주 물량이 부족해 일부 단지의 계약금 변화를 분양 시장의 변곡점으로 연결 짓기는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대출 규제에 금리 인상까지 겹치며 예비 분양자들이 다소 관망하는 분위기는 형성될 수 있겠지만 일부 단지의 계약금 정책이 바뀌었다고 과거와 같은 미분양을 걱정할 단계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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