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정여울의 언어정담] 이상하고 엉뚱해도, 나만의 길을 갈게

작가

고교시절 자주 몽상에 빠졌지만

내 모습 그대로 인정해준 친구들

따스한 마음씨에 인생의 힘 얻어

끝까지 지켜야할 소중한 솔메이트





가끔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을 꿰뚫어 보아 나를 놀라게 하는 사람이 있다. 고교시절 나는 친구를 우리 집에 데려와 영화를 같이 봤는데,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카프카’라는 영화였다. 열일곱 살의 내가 이해하기는 어려운 영화였기에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영화를 봤는데, 20여 년이 지난 뒤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때 친구는 영화를 보면서 나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싶었는데, 내가 너무 깊은 생각에 잠겨 있어 도저히 말을 걸 수가 없었다고. 학창시절 나는 자주 그렇게 골똘히 나만의 공상에 빠져 있었는데, 그때마다 너무 멋져 보였다고.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게 뭐가 멋지냐’고 대답했지만 그 친구의 따스한 마음에 감동을 받았다. 수업시간에도 자꾸 딴생각에 빠지거나 먼산바라기를 하는 나를 선생님들은 따끔하게 지적하셨지만, 그 친구는 내가 나만의 소중한 몽상에 빠져 있음을 알아준 것이다. 이렇듯 나의 엉뚱함이나 이상함까지도 나의 재능으로, 나의 좋은 점으로 인정해주는 친구들이 있기에, 나는 지금도 용기를 내어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작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 아닐까.

자기만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기벽(奇癖)이 있다. 이상한 습관, 특이한 취향, 기상천외한 행동. 그들의 기벽은 타인에게 가십거리가 되지만, 당사자에게는 그런 행동들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나는 입시위주의 수업에 나를 끼워 맞출 수 없어서, 타인의 정상적인 삶 속에 섞이기 어려워서, 나만의 독특한 생각의 바다 속으로 도망쳤던 것이다. 그런 내 엉뚱한 모습까지 비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듬어 준 친구야말로 내가 진실한 내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게 해주었던, 눈부신 생의 선물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 그는 하버드대 동창생들과 너무 다른 삶을 살았기에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버드대 졸업생이 숲속에 혼자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산다니, 사람들은 갖가지 억측에 빠졌다. 돈을 못 벌어서 그런 거겠지, 원래 이상한 사람인가 봐, 제정신은 아닐 거야. 그런 가십은 소로에게 어떤 상처도 주지 못했다. 소로는 타인의 시선에 시달리지 않고 오직 자신만의 열정과 의지를 실험하기 위해 월든호수의 오두막에서 독창적인 실험을 시작한 것이었다. 시인 엘러리 채닝은 소로의 든든한 벗이었다. 채닝은 소로가 숲속을 산책하는 일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발견하는 것을 이해했고, 소로가 야생화나 숲속의 동물들에게 무한한 친밀감을 느끼는 것을 타박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소로를 낙오자이자 아웃사이더라 말했지만, 채닝은 소로의 아주 사소한 감정까지 이해해주었다. 소로가 무리한 강연과 집필일정을 강행하다 폐결핵에 걸려 사망했을 때도, 채닝은 슬픔을 삼키며 그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이야기했다. “누구도 소로보다 더 위대한, 미완성 인생을 살지 못했다.”



언론인이자 평론가였던 마가렛 풀러는 소로의 독특한 생활방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줬다. 풀러는 다소 거칠고 사회성이 부족해 보이는 소로의 모습이 결코 냉정함이나 차가움이 아님을 알아주었다. 그녀는 소로의 마음이 언젠가는 해맑은 훈풍과 짙은 꽃향기로 가득 찰 것을 믿었다. 소로는 마치 알프스산맥처럼 험준하고 가파른, 좀처럼 다가갈 수 없는 성격을 지녔지만, 마가렛은 아직 봄이 찾아오지 않은 소로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아무리 독특해도, 아무리 엉뚱해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친구이며, 소로는 그런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아름다운 월든의 생태계를 지켜냈다. 월든의 생태계란 단지 아름다운 자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고, 모든 생명의 아픔에 공감하며, 나아가 고통받는 모든 존재들의 눈물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 따스한 존재들의 공동체다. 당신의 가장 엉뚱하고 이상한 모습까지도 사랑해주는 친구, 그가 바로 생이 끝날 때까지 붙들어야 할 소중한 솔메이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