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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30여년간 수천 명의 죽음을 접하며 깨달은 삶의 통찰

■대통령의 염장이

유재철 지음, 김영사 펴냄





삶을 고찰하려면 연회장이 아니라 장례식장에 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장례식장의 슬픔과 눈물 속에 고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돌아보다 보면 자연히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30여년간 수 천명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돌보며 죽음을 상시 접했던 대한민국 1호 전통장례명장인 장례지도사 유재철씨는 신간 ‘대통령의 염장이’에서 “고인을 고이 보내드릴 때마다, 아이러니하게도 참된 삶이란 무엇인지 가르침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보내드린 모든 분의 삶과 죽음에 있는 가볍지 않은 무게와 마주하며 살다 보니,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낼 수 없었다는 게 그의 얘기다.

그는 책에서 30년 넘게 장례지도사로 일하며 매일같이 삶과 죽음을 접했던 소회를 64편의 에세이로 풀어놓았다. 그가 마지막 길을 돌봤던 사람들은 각계각층 다양하다. ‘대통령 염장이’란 별명을 안겼던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 6명을 비롯해 법정스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무용가 이매방씨, 배우 여운계씨 등이 있는가 하면 농민운동가 이경해 열사, 이름 없는 이주노동자나 노숙인, 무연고자 등도 그의 손길을 거쳤다. 하지만 저자는 “의외로 죽은 이들의 손안에 든 것은 돈, 부동산, 명예, 지위 등이 아닌 매우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들”이라며 죽음 앞에서는 모두 똑같음을 전한다.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장례식장은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고찰하는 장이다. 사진 제공=이미지투데이




그래서인지 이 책은 여러 가지 죽음의 현장을 다루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마음가짐으로 가득하다. 에이즈가 터부시되던 시절 유족이 병명을 숨겼던 고인을 염한 경험에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혐오가 아닌 측은지심”이라고 말하며, 자살로 세상을 뜬 이를 염하는 날엔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따듯한 안부전화를 건다. 교통사고로 죽을 뻔 했던 경험에서는 매일 후회할 일을 반성하지 않으면 죽기 전에 그 일을 청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숨기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주된 일인 염습(殮襲·죽은 사람의 몸을 씻긴 뒤 옷을 입히고 염포로 싸는 일)은 건장한 사람조차 쉽게 버티지 못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멘탈이 필수적이다. 한 인생의 마무리를 자신의 손으로 대신해 준다는 사명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직업이기에 고인을 돈으로만 보고서는 할 수 없으며, 염습을 돈벌이로만 보는 사람을 그는 ‘염쟁이’라고 칭한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의 장례식을 미리 생각해 보고 미리 기획함으로써 ‘준비하는 죽음’을 맞자는 제안도 한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게 되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보내느냐에 따라 그 시간이 축복이 될 수도 있고 불행이 될 수도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책은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인들의 장례를 이끌면서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뒷이야기들도 담고 있다. 무소유를 실천했던 법정스님의 장례 때 위패에 ‘비구 법정’이라고만 쓰고 화환은 물론 펼침막조차 받지 않았던 경험, 엄청나게 많은 조문객이 몰렸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동안 애도를 표현할 수단을 찾던 중 상여 행렬의 만장에서 노란 추모 리본을 착안했던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이건희 회장의 장례 과정에서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유족들이 보여준 모습에선 의외의 겸손함을 발견하기도 한다. 1만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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