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출범할 윤석열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의 3개 핵심 협약 이행이라는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경영계는 한층 강화된 노조권 강화로 인해 노사 관계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노동계는 ILO 협약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바꾸는 과정이 여전히 산적했다고 목소리를 높일 형국이다.
1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제29호, 제87호, 제98호 등 3개 ILO 핵심 협약이 20일 발효된다. 제29호는 모든 형태의 강제 노동을 금지하고 제87호는 노사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98호는 근로자의 단결권 행사를 보호하도록 했다. ILO 협약은 보편적인 국제규범으로서 현행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이번 협약 발효를 통해 한국은 노동권 선진국으로 진입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우려는 ILO 3개 핵심 협약 발효 하루 전까지도 노사정의 입장 차이가 크게 엇갈린다는 점이다. 협약 비준을 추진한 문재인 정부는 ILO 협약 발효의 의미를 높게 자평하는 동시에 이행을 위한 준비도 제대로 마쳤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2018년부터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를 시작으로 2020년 협약 비준을 위한 관련 법 등이 국회 통과를 마쳤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든다. ILO 협약 비준을 위해 마련된 일명 ILO 3법(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 개정안)은 작년 7월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경영계는 ILO 협약 발효를 기점으로 산업 현장에 상당한 혼란이 본격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미 노동권이 강화된데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도 여전해 노사 갈등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는 비유가 나올 정도다. 실제로 ILO 3법은 해고자·실직자 등 비종사 근로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등 이전보다 노조권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8일 ILO 협약을 주제로 한 보고서에서 노동계가 ILO 핵심 협약 취지를 확대 해석하고 요구할 경우 산업 현장의 혼란을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노동계도 불만이긴 마찬가지다. ILO 3법으로 협약 비준 절차를 제대로 마쳤다는 정부와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다. 노동계는 협약에 위배되는 조항이 여전해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대표적으로 노조법 제2조를 근거로 노조 설립의 제한 등을 문제삼았다. 양대 노총은 이 일환으로 20일 ILO 발효의 의미와 우려에 대한 공동 기자회견을 연다. 양대 노총 연대는 노동계에서 이례적이다.
법조계에서는 ILO 핵심 협약이 발효된 이후부터 현장 곳곳에서 기존 법과 충돌할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ILO 핵심 협약은 원칙적이고 추상적인 성격이 짙어 아무리 세세하게 법을 만들어도 해석을 두고 이견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이날 사법정책연구원이 공개한 ILO 협약에 대한 보고서도 “개정 입법(ILO 입법)이 국제노동기준과 차이를 완전하게 극복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법부는 재판의 당사자가 국제노동기준에 근거한 주장을 펼 때 국내법 규정이 미흡하다고 거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ILO 핵심 협약을 성실하게 이행했는지 여부는 늦어도 1년 내 판가름된다. 정부는 협약 이행상황이 발효된 이듬해부터 ILO에 정기 보고서를 제출할 의무를 진다. ILO 전문가 위원회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이행 상황을 점검한다. 만일 협약 미준수 사례가 발생하면 노사 단체의 진정뿐만 아니라 다른 회원국의 이의 제기까지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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