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종료를 코앞에 두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친서를 교환했다. 정권 교체기 안보 상황을 관리하려는 차원으로 보이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는 사전·사후 교감 없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져 실효성 여부는 미지수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20일 김 위원장에게 마지막 친서를 보냈고 김 위원장이 전날 답신을 보내왔다고 22일 밝혔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지난 5년간 상호 신뢰와 대화 속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노력을 계속 기울여나가고 있는 데 대해 공감하고 남북의 동포들에게도 모두 따뜻한 인사를 전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친서에서 “대화로 대결의 시대를 넘어야 하고 북미 간의 대화도 조속히 재개되기를 희망한다”며 “대화의 진전은 다음 정부의 몫이 됐으며 김 위원장이 한반도 평화라는 대의를 간직하며 남북 협력에 임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울러 “남북이 만들어낸 판문점 선언과 평양 선언, 9·19 군사 합의가 통일의 밑거름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답신에서 “여태 기울여온 노력을 바탕으로 정성을 쏟으면 얼마든지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발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임기 마지막까지 민족의 대의를 위해 마음 써온 문 대통령의 고뇌와 수고·열정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경의를 표한다”며 “퇴임 후에도 변함없이 존경하겠다”고 했다.
이번 남북 정상 간 서신 교환은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로 처음 알려졌다. 청와대는 서신 교환 사실을 이틀 동안 함구하다가 북측이 공개한 뒤에야 밝혔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번 서신을 통해 2018년 남북정상회담 등을 회상하며 덕담을 나눈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개인적 서신에 가깝다고 평가되는 것이다. 이 같은 정상 간의 개인적 서신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일이 드물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이번에 북한이 남북 정상 간 서신을 먼저 공개한 것은 의도가 담긴 행위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을 추켜세워 대북 강경론을 내세우는 윤 당선인을 길들이려 한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문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표명을 통해 향후 윤석열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며 “윤석열 정부가 대북 강경책을 시도할 경우 한반도 긴장의 책임을 남측에 돌리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밝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역시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친서에 빠르게 화답하고 이를 먼저 공개한 이유는 자신들이 평화 애호 세력임을 부각하려는 의도”라며 “북한은 남측의 새 정부를 향해 협조하지 않을 경우 7차 핵실험 등 추가 도발을 단행할 수 있고 그 책임은 새 정부에 있다는 명분을 축적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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