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초기 가마터인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에서 1000년 전쯤 만든 왕실 제기(祭器·제사 관련 그릇이나 도구)로 추정되는 도자기 수십 점이 한꺼번에 발견됐다. 고려시대 유적에서 상태가 양호한 제기가 다량으로 출토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25일 문화재청은 용인시와 매장문화재 조사기관 서경문화재연구원이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 335-1번지 일원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조사지 북쪽 건물터 외곽의 구덩이로 보이는 장소에서 고려 초기의 백자 생산관련 시설과 왕실 제기가 출토됐다고 밝혔다.
건물지와 통로, 계단, 저장 구덩이, 폐기장 등 백자 가마 관련 시설이 확인됐고 유물로는 고려 초기 청자나 백자의 가장 이른 형태인 선해무리굽 백자완(사발) 등 각종 제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이 출토됐다. 문화재청은 “유교적 정치이념으로 국가를 통치한 고려 왕실은 제사를 지낼 때 도자 제기를 사용했고, 1059년에는 ‘제기도감’이라는 관청까지 설치했다”며 “유물들은 이곳이 고려 초기부터 백자를 생산하며 왕실에 제기를 공급한 생산지임을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보(?), 궤(?) 등의 왕실 제기와 갑발(匣鉢) 등 온전한 형태의 제기가 20여 점 출토됐다. 제작 시기는 10세기 후반에서 11세기 초반 사이로 판단됐다. 제기 높이는 30∼34㎝이다. 보와 궤는 중국 송나라 때 출판된 문헌 ‘삼례도’와 ‘고려도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왕실의 제기로 고려도자 연구는 물론 왕실 통치철학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보는 벼와 조를 담는 그릇으로, 바깥쪽은 네모지고 안쪽은 둥근 형태다. 궤는 곡식인 기장을 담는 그릇으로 보와 반대로 바깥쪽이 동그랗고 안쪽은 사각형이다. 갑발은 가마 안에서 도자기에 불길이 직접 닿지 않도록 씌우는 큰 그릇이다.
서경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가마터에서는 도자기 파편이 발견되고, 파손되지 않은 그릇은 많이 나오지 않는다”며 “이번에 도자기가 모여 있던 장소 인근의 건물터는 관청이나 공방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조사단은 형태가 온전한 제기를 모아둔 이유에 대해 왕실에 납품하기 전 제기 선별 작업을 하거나 그릇을 보관했던 장소일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납품 이후 불필요해진 제기를 폐기한 장소라는 견해도 제기됐다.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는 고려시대 초기부터 백자를 생산한 가마터로, 벽돌로 지은 가마와 길이 83m인 진흙 가마 등이 확인됐다. 1980년대 세 차례 발굴조사가 이뤄졌고, 지난해 6월부터 사적 남쪽 구역에서 제4차 발굴조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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