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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인재, 中 20만명 배출할때 韓 650명뿐…학과 증원 절실"

1부. '다이내믹 코리아' 기업에 달렸다

<2> 인재 기근 시달리는 한국-서경 펠로·전문가 좌담회

사회=서정명 산업부장





글로벌 최첨단 기술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전기차·배터리 업계에서는 최근 ‘인재 경쟁’이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늘어난 수요에 대응하느라 각 업계마다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지만 정작 확대된 사업 규모에 걸맞은 인재를 확보하지 못해 아우성이다. 반도체 업계의 경우 연간 1만 명의 신규 인력이 필요한데 반도체학과에서 배출하는 졸업생은 1년에 650명 수준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2031년까지 3만 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개발 규제로 대학에서 첨단 기술 인재를 충분히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며 관련 규제를 과감히 철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윤석열 정부 시대를 맞아 서울경제가 마련한 좌담회에서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분야 서울경제 펠로(자문단)와 전문가들은 정부가 인재 양성에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는 중국·대만 등 경쟁국 사례를 비교하면서 “자칫하다가는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좌담회에는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과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 정순남 한국전지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이 참석했다.

◇“대학 학과 증원 자율화해야”=좌담회에 참석한 주요 산업 전문가들은 첨단산업 인재 육성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로 수도권의 ‘학과 신증설 규제’를 지목했다. 주요 인재들은 수도권 대학에 집중되는데, 정부는 수도권 집중화를 견제한다며 대학의 학과 신증설을 가로막고 있다. 박 회장은 “학회에서 조사한 바로는 지난해 반도체 업계에서 1만 명 정도의 신규 인력을 채용했는데, 이 중 약 14% 정도만 반도체 전공자로 분석됐다”며 “나머지는 반도체 전공이 아닌 사람이 반도체 회사를 왔다는 얘기다. 그러면 재교육으로 인한 비용이 소요되고 당사자도 전공이 아닌 일을 하다 보니 적응을 하지 못해 이직률이 높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면 대만은 정부가 주도해서 1년에 1만 명씩, 중국은 20만 명씩 반도체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면서 우수한 인력을 배출하니 재교육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반도체나 인공지능(AI), 전기차 등 미래 분야에서는 새로운 인력 공급이 매우 중요하고, 우수한 인력은 수도권에 몰리는 성향이 있다”며 “문제는 인력 양성 문제까지 수도권 규제의 틀에서 막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교육부가 갖고 있는 대학 통제 권한을 해소해 대학 내 관련 학과 증원 문제를 자율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부회장은 “배터리 주요 대기업들은 서울의 유명 대학과 계약학과를 운영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배출되는 인원이 1년에 겨우 150명 수준이다. 실제로 필요한 건 1년에 석·박사급 650명 정도”라며 “그나마 대기업은 임시방편으로 계약학과라도 운용하지만 중소기업은 그마저도 뽑을 학생이 없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결국 본질적 문제 해결 방법은 대학에 자율성을 줘서 학부를 많이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학부생이 많아야 석·박사가 많아지고, 그래야 대기업 외에 중소기업까지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질적인 측면에서 우수 교원을 확보하기 위한 지원책 마련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정 회장은 “서울대에 AI를 가르칠 수 있는 교수가 1~2명뿐이라고 하는데 서울대에서 연봉을 1억 원 준다면 해외에서는 10억 원을 줄 수 있다. 누가 국내에서 애들을 가르치려고 하겠나”라며 “교육의 질은 교수의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우수한 교수를 확보하려면 반도체 등 전략산업에 대해 연구개발 인건비를 더 높게 반영할 수 있도록 해주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서 성공할 환경 조성해야”=애써 인재를 육성해 놓아도 해외 기업들이 고연봉을 미끼로 핵심 인력을 채 가는 상황도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경쟁 업체 입장에서는 핵심 인력 확보뿐 아니라 상대 회사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효과도 있다. 최근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면서 미국·중국 등 주요 업체들의 ‘인재 뺏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부회장은 “인간의 본능이라는 게 급여를 많이 주고 근로 조건이 좋은 회사로 가고 싶을 수밖에 없다”며 “연봉 1억 원을 주던 것을 2억 원으로 올려줄 수는 있어도 5억 원을 주기는 어렵지 않나. 인력 해외 유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박 회장은 “최근 삼성전자 직원들이 학회 일정 등으로 해외를 방문하면 곧바로 리쿠르팅 회사에서 영입 제의를 하며 접근한다”며 “외국의 반도체 회사가 수억 달러를 리쿠르팅 회사에 돈을 주면서 채용을 의뢰하고 있다는 얘기가 돌면서 ‘학회에서 외부인을 만나지 말라’는 경고까지 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는 퇴직자들에 대한 스카우트가 늘고 있는데 이들은 돈을 떠나서 한국에서 일할 수 있으면 나가지 않을 사람들”이라며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가장 좋은 분야는 차량용 반도체와 같은 신사업 분야다. 정부에서 나서서 기존 기업들이 이런 신사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회장은 “한국에서 경력 관리를 하고,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며 “예를 들어 중국에 가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분석해서 그보다는 한국에 있는 게 더 낫게끔 문화적·제도적 전략 등을 세워야 한다. 돈을 더 받는 것보다 삶의 질 측면에서 한국에 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특단의 조치’ 시급=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10일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인력 양성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하루빨리 내놓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인력 풀(Pool)의 근간을 이룰 전공 학부생 증원뿐 아니라 기존 인력을 지키기 위한 스톡옵션 등 다양한 조치를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인력 양성이 정말 시급하다. 윤석열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내놓겠다고 했는데 어서 빨리 내놓지 않으면 산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대기업 외에 소부장(소재·부품·장비기업), 중소·중견 기업의 인력난 해소를 위해 정말 다양한 정책을 써보고 고민해봤지만 유일한 해법은 학부 학생을 늘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반도체 산업은 결국 석·박사 인력이 핵심인데 빠른 시일 내에 우리나라에 반도체대학원을 30~40개 만들어야 한다”며 “그래야 석·박사 인력이 늘어나면서 중소기업까지 인력이 도는 선순환 체계를 갖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인력을 지키기 위해 스톡옵션 규제 등을 풀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그는 “반도체 소부장,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에서 핵심 인력을 빼갈까 봐 스톡옵션을 많이 줘서라도 막고 싶어 하지만 (스톡옵션의 비과세 한도 등으로) 상한이 있어 충분히 제공하지 못해 어렵다고 한다”며 “이런 것을 해소하는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정 회장은 “구조적인 대책을 위해서는 우수 교원 확보가 제일 중요하다”며 “과감하게 미국 등 선진국 주요 대학에 국비 유학생을 대거 보내 국내에서 교수로 활동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우수 인재는 대학 외에 기업에 그나마 많이 있는데, 이분들을 교수로 활용하고 학위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산학 협력 대학을 만드는 방식을 단기적 차원의 ‘특단의 대책’으로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해외 생산 시설 위주인 배터리 업계의 특성을 고려한 지원책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배터리의 경우 제품이 무겁다 보니 운송 비용 부담 등으로 수요처와 최대한 가깝게 공장을 짓는 경우가 많다. 정 부회장은 “해외로 공장이 나가다 보니 국내 일자리는 상대적으로 별로 만들어지지 않는 편”이라며 “국내에서 일자리를 당장 못 만든다고 연구개발 등 지원 예산을 적게 주는데 그보다는 미래를 보고 양적 지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외투자를 하면 결국 외화를 획득해 국익에 보탬이 된다”며 “폴란드·헝가리 같은 주요 진출 지역에 경제협력관을 두는 등 현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리=진동영 기자 사진=이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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