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내부 상황이 심상치 않다. 자국 내 코로나19 대규모 감염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핵 협박 행보에 가속을 내고 있다. 핵무장으로 국제 제재를 자초한 김정은 정권이 감염병 확산 사태를 맞아 한미 등에 지원을 요청하고 개방의 길로 들어서기보다는 대남·대미 안보 위기를 고조시켜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배출시키고 내부 결속을 다져 독재적 국가 운영을 지속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 정부 및 연구기관 관계자들은 북한의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경제난 등 내부의 복합적 위기를 심화시켜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을 한층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 정부 당국자는 “그동안 코로나19 감염 사례가 전혀 없었다고 공언해 온 북한이 최근 이례적으로 대유행에 가까운 수준의 감염자(발열자) 발생 상황을 공개한 것은 그만큼 더 이상 사태를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내부 상황이 심각해졌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감염 사태를 알림으로써 주변국이나 국제기구의 백신·치료제 지원을 이끌어 내려는 차원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외부 지원을 거부한 채 코로나 방역을 명분으로 주민들의 이동·외출·경제활동을 한층 더 통제하기 위한 포석일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북한 내부 확산 상황은=북한의 상황이 이번에 공개된 것보다 심각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한 대북연구기관 관계자는 15일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오늘 북한이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공개한 신규 감염자 수(13일 저녁~14일 오후 6시 기준 신규 발열자)가 29만 명을 넘어 거의 30만 명에 달하는데 당 선전 매체가 밝힌 수치가 이 정도면 실제 감염자 수는 훨씬 더 많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이미 주요 지역에서 방역을 이유로 상당한 수준의 주민 통제가 이뤄져 왔음에도 이번에 감염 사태가 터졌기 때문에 마치 감염 발생 시 도시 전체를 봉쇄한 중국처럼 한층 더 강도 높은 내부 통제 조치를 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이런 통제만으로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느냐다. 전문가들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이동 통제를 통해 전국적인 확산을 어느 정도 차단할 수는 있지만 이미 발생한 도시 내 감염 및 위중증자 발병률을 낮추려면 충분한 의약품과 의료 인력이 동원돼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은 장기간의 국제 제재와 경제력의 한계 등으로 인해 방역에 필수적인 의약품 등의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료품 부족은 북한 매체들의 보도 내용에서도 엿볼 수 있다. 노동신문은 연일 자가 치료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확진자 증가를 열악한 의료 체계로 감당할 수 없다 보니 감염자가 알아서 초기 해열 등을 하라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노동신문은 14일 보도에서 대체요법의 일종인 ‘고려치료방법’을 소개했다. 경증환자는 폐독산, 삼향우황청심환을 복용하라는 것이다. 아울러 민간요법으로 금은화를 한 번에 3~4g씩 또는 버드나무잎을 한 번에 4~5g씩 더운물에 우려서 하루에 세 번 먹으라는 내용도 곁들였다.
◇안보 영향은=이번 감염 사태와 관련해 아직 북한 내에서 군사적으로 이상 동향은 포착되지 않았다고 군의 한 관계자는 전했다. 다만 이번 사안으로 준비 완료 상태인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연기·중단된다든지 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우리 군 관계자들은 내다봤다. 실제로 북한 외무성은 이날 ‘조선반도 정세 격화의 장본인은 미국이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주요 7개국(G7) 비확산 책임자그룹이 북한의 합법적 자위권을 침해했다고 적대적인 주장을 펼쳤다. 아울러 “우리는 앞으로도 누가 뭐라고 하든 그 누구도 다칠 수 없는 무적의 군사력을 계속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20년 이상 중단해 왔던 영변 50㎿급 원자로 건설을 최근 재개한 움직임을 보인 것도 핵 무력 확충 의지를 보인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이번 사태가 남북 및 남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북한이 우리 정부 및 국제기구의 코로나19 백신 제공 등 인도주의적 의료 지원을 수용할 경우 해당 협의 채널 마련을 계기로 긴장 완화를 위한 대화의 창구가 조금씩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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