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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규제 거부하는 탈중앙화 코인의 민낯

■이재용 디지털전략·콘텐츠부 부장

루나·테라 등 '연 20% 이자' 유혹

스테이블코인 신뢰 무너지자 폭락

투자금 50조 증발에도 책임자 없어

새정부 암호화폐 규제완화 신중해야





한국산 암호화폐 ‘루나’와 ‘테라’의 폭락 사태가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을 충격에 빠트렸다. 이번 사태로 20만 명이 넘는 국내 투자자가 피해를 봤고 50조 원의 투자 자금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테라와 루나 코인을 발행한 블록체인 기업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평가도 한순간에 뒤집혔다. 불과 한 달여 전만 해도 ‘한국판 일론 머스크’라고 불렸던 권 대표는 지금 ‘폰지 사기꾼’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검찰은 이번 사태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수많은 투자자를 울린 루나와 테라의 운영 방식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다. ‘스테이블코인’ ‘디파이’ ‘앵커프로토콜’ 등 온갖 전문용어가 등장한다. 기술적으로는 복잡해 보여도 루나와 테라 같은 암호화폐의 지향점은 ‘탈중앙화된 금융 시스템’으로 요약된다. 탈중앙화 금융이란 은행 등 금융기관의 중개와 관리를 받지 않는 형태다. 감독 기관의 규제도 당연히 없다. 일찍이 비트코인의 창시자로 알려진 나카모토 사토시는 “비트코인은 중앙 서버와 신뢰 기관이 필요 없으며 완전히 탈중앙화돼 있다”고 정의한 바 있다.

테라와 루나 역시 탈중앙화를 추구하는 암호화폐다. 테라는 코인의 가치가 ‘1코인=1달러’에 연동되도록 설계된 스테이블코인이다. 전통적인 스테이블코인은 가치를 고정시키기 위해 미국 달러화 같은 법정화폐를 담보로 한다. 하지만 테라는 자매 코인인 루나를 활용한 알고리즘만으로 가치를 유지하도록 설계됐다. 세계에서 가장 중앙화된 통화인 달러를 담보로 하지 않아야 진정한 탈중앙화가 가능하다는 계산이었다.

테라·루나 생태계로 투자자를 끌어모은 일등 공신은 ‘앵커프로토콜’이라는 디파이(De-Fi) 서비스다. 디파이는 은행 등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는 탈중앙화된 금융 서비스를 뜻한다. 테라·루나 발행 업체는 테라를 예치하면 연 20%에 달하는 이자를 약속하는 디파이 모델을 앞세웠다.

전통적 금융의 신뢰 기반이 금융기관과 감독 시스템이라면 탈중앙화 금융의 신뢰는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합의된 알고리즘에서 나온다. 하지만 테라와 루나가 동반 폭락하는 과정에서 스테이블코인의 가격이 1달러에 고정된다는 알고리즘에 대한 신뢰가 하루아침에 무너져버렸다.



탈중앙을 내세우지만 사실상 중앙화된 암호화폐 생태계의 의사 결정 구조도 도마 위에 올랐다. 새로운 테라 블록체인인 ‘테라 2.0’을 만드는 투표는 대다수 개인투자자들의 반대에도 ‘고래(암호화폐의 큰손)’들의 찬성 속에 통과됐다.

루나 사태가 터진 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에서는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규제 논의가 활발하다. 이번 사태를 통해 사고가 나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탈중앙화 금융 시스템의 민낯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탈중앙화라는 달콤한 말 뒤에 숨겨진 취약성과 위험성도 새삼 깨닫게 됐다.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이번 사태를 가상자산 투자자를 보호하고 시장 투명성을 강화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 새 정부의 암호화폐 규제 완화 공약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코인 투자 수익의 5000만 원까지 비과세, 국내 암호화폐공개(ICO) 허용, 대체불가토큰(NFT) 거래 활성화 등을 공약했다. 가상자산 투자에 적극적인 MZ세대의 표심을 잡기 위한 의도였다.

테라·루나 사태를 촉발한 권 대표는 올 3월 트위터에 “한국 대통령 당선인이 암호화폐 시장 활성화를 약속했다”는 일본 언론의 기사를 공유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Your Excellency, I am here to serve(각하, 잘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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