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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700개 규모 텅텅…"이 속도면 올 800여곳 문닫을 판"

■중기 폐업 속출…불꺼지는 산업단지

중고 기계설비 매물 역대 최다…살 사람 없어 먼지만

법인 파산 늘고 공장·용지 경매물건 月 300건 달해

자금난에 대출도 늘려 금리인상기 부실 리스크 고조

수도권 최대 공업단지인 인천 남동공단의 가동이 중단된 한 중소기업 공장에 자재와 폐기물이 쌓여 있다. 인천=이호재 기자




안산시 반월공단의 한 공장이 가동이 중단돼 황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안산=이호재 기자


17일 찾은 반월국가산업단지. TV와 휴대폰 등에 쓰이는 인쇄회로기판(PCB)을 가공하는 A사 정문 앞에서는 20년 이상 사용한 외형 가공 프레스 6대가 화물차에 실리고 있었다. 이 회사의 김 상무는 “공장 4곳을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 공장 2곳을 처분했다”며 “사업 규모를 줄여도 일감이 있어야 버틸 수 있는데 미래가 안 보인다”고 했다. A사는 일감이 급격하게 줄면서 경영 여건이 악화해 자식 같은 기계 12대 중 6대를 처분하기로 했다.

인근에 위치한 전국 최대 규모의 경기 시화단지 중고 기계 유통단지에서도 중소기업 경영난을 실감할 수 있었다. 300여 개 매장 곳곳에는 비닐로 덮인 기계 설비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공작 기계인 범용 선반과 밀링머신·연삭기·절단기 등이었다. 이곳에서 10년째 자리 잡고 있는 한 유통 업체의 B 대표는 “최근 기계와 철강, 자동차 부품 업체의 폐업이 급증하면서 기계 설비가 매물로 쏟아지고 있다”며 “수요가 없어 결국 고철 용도로 팔려나갈 것 같다”고 설명했다.

원자재 값 급등과 글로벌 공급 차질 악화, 경기 침체 장기화 등의 ‘삼중고’로 사업 규모를 줄이거나 아예 사업을 접으면서 공장 문을 닫는 중소 제조 업체가 속출하고 있다. 주요 산업단지 길거리에서 중고 기계를 매물로 내놓았다는 현수막을 쉽게 찾아볼 정도다.





19일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공장 문을 닫는 중소 업체가 늘어난 여파로 국가산단 내 휴·폐업이 급증하면서 국가산단 면적 가운데 축구장 700여 개 규모의 부지가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국가산단 유휴 부지는 2015년 213만 8000㎡에서 2016년 237만 5000㎡로 완만히 증가하다 2018년에 469만 4000㎡로 빠르게 확대됐다. 코로나19 여파로 경영 악화를 버티지 못하고 국가산단을 떠난 업체가 급증하면서 지난해에는 500만㎡(잠정 추산)가 넘는 공장 부지가 비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코로나 여파로 국가산단의 공장 부지가 여의도 공원(22만 9000㎡) 21개에 해당하는 면적이 비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소 제조 업체의 휴·폐업으로 설비 매물도 쏟아지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중고 기계 설비 거래 사이트에 따르면 개인과 기업이 직접 등록한 기계 설비 매물은 지난해 838건에 달한다. 2017년 사이트가 개편된 후 최고치로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2020년의 784건을 넘어선 수치다. 중고 기계의 경우 대부분 중소 제조 업체가 사들이기 때문에 제조업 바닥 경기를 가늠하는 잣대로 꼽힌다. 한국기계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지금처럼 매물이 많지는 않았다”며 “코로나19로 일감 수주가 어려워지면서 경영을 포기한 제조 중소기업들이 생명과 같은 설비를 매물로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폐업 공장 속출은 법인 파산 수치에 그대로 반영됐다. 중소기업연구원이 내놓은 5월 중소기업 동향에 따르면 4월 법인 파산 누계 건수는 296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건(7.2%) 증가했다. 4월만 놓고 봐도 80건으로 전년 동월 대비 8건(11.1%) 늘었다. 공장 및 공장 용지 경매 물건도 월평균 30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보여주는 공장 가동률 역시 50인 미만 소기업은 70%를 밑돌고 있다 . 노민선 중기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고 설비가 늘어난다는 것은 결국 경기 침체의 신호로 볼 수 있다”며 “최근 원자재 값과 국제 유가가 급등해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점도 중소기업계의 잠재적 위협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중소 제조 업체의 경영난 심화로 은행을 통한 자금 조달 규모도 덩달아 늘어나는 추세다. 미래의 위협 요인으로 또 다른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의 대출이 더 확대되고 있다. 운영자금과 시설 자금에 대한 수요 확대로 가파른 증가세를 나타낸 까닭이다. 5월 말 기준 대기업 대출 증가 규모는 4조 3000억 원으로 전월보다 증가 폭이 1000억 원 축소됐다. 반면 중소기업 대출 증가 규모는 1조 1000억 원 불어난 8조 9000억 원을 기록했다.

증가한 대출액만큼 연체에 따른 부실 리스크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3월 중기 대출 연체율은 0.27%로 대기업(0.23%)보다 높았다. 코로나 팬데믹이 본격화한 2020년 이후 중기 대출이 대기업보다 계속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울산시에 자리 잡은 조선 협력 업체의 한 대표는 “대출금리가 코로나 전에는 2.5%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3.5%를 훌쩍 넘었다”면서 “원자재 값이 오르고 금리까지 치솟아 경영 상황이 한계에 봉착해 사실상 직원들 월급 주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 장기화로 중소기업 자금 사정이 지속해 악화하는 등 대내외적인 중소 업계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모양새”라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앞으로 금리 인상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크게 불어난 중기 대출의 부실화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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