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헌법재판소에서 한국 사회의 오랜 논쟁거리인 사형제 존폐를 두고 공개 변론이 열린 가운데 이날 7대 종단 지도자들이 사형제 폐지를 촉구하는 공동 의견서를 처음으로 제출했다.
이름을 올린 7대 종단 지도자들은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과 성균관 손진우 관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이홍정 목사, 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종교간대화위원장인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원불교 나상호 교정원장, 천도교 박상종 교령, 한국민족종교협의회 김령하 회장이다.
이들은 의견서에서 “사형 제도에 대한 세 번째 헌법소원이 청구된 지 3년 6개월 만에 헌법재판소가 변론 기일을 열고 결정을 준비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라며 “7대 종단 대표들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모든 사람의 평등한 존엄을 선언하며 사형 제도 폐지를 위한 위헌 결정을 간절히 기다린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범죄를 저질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이들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서도 “참혹한 범죄를 저질렀으니 죽어 마땅하다며 참혹한 형벌로 똑같이 생명을 빼앗는 방식을 국가가 선택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국가는 범죄 발생의 근본적 원인을 파악하고 모순점을 해결해 범죄 발생 자체를 줄여나가는 예방 정책을 펼치고, 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넓혀 나가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사형 제도의 폐지와 사형 집행의 영구적 중단은 세계적인 흐름이지만 우리나라의 사형 관련 법과 제도는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면서 “15대 국회를 시작으로 21대 국회까지 총 아홉 건의 ‘사형제도 폐지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단 한 번도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끝으로 “인권의 마지막 희망이라고도 할 수 있는 헌재에서 정부와 국회가 국민의 생명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법과 제도를 만들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것을 당부 드린다”며 “우리 종교인들은 대한민국과 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의 사형 제도 폐지를 위하여 마음을 모으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에서는 1997년 12월 30일 사형수 23명에 대한 마지막 사형 집행 후로 25년 가까이 집행이 이뤄지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한국을 10년 이상 사형 집행이 중단된 ‘실질적 사형폐지국가’(Abolitionist in Practice Country)로 분류한 지 오래다. 유엔 193개 회원국 중에 모든 범죄에서 사형을 폐지한 나라는 108개국, 군형법을 제외한 일반 범죄에서 사형을 폐지한 국가는 8개국, 한국처럼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는 28개국으로 전체 75%가 사형을 폐지하거나 집행하지 않고 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인 김선태 주교(전주교구장)는 이날 헌재에 의견서를 제출한 뒤 기자들과 만나 “오랜만에 헌법재판소 공개 변론이 열리는데 이번 기회로 사형 제도가 완전히 폐지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김 주교는 “모든 인간은 정말 존엄하고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인권 생명의 존엄성은 침해받을 수 없다”며 “이번 기회에 한국이 사형 제도를 폐지해서 정말 인권 국가로 거듭났으면 좋겠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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