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는 지방자치단체장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을 지자체가 게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전라북도 정읍시장에게 진정인의 현수막 게시를 불허하도록 한 조처를 재검토할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향후 주민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시 도시재생과 직원을 대상으로 재발 방지 교육을 하도록 권고했다고 20일 밝혔다.
정읍시의 한 시민사회단체 대표인 A씨는 지난해 9월 시 지정 게시대에 현수막을 게시하고자 시 민간위탁업체인 옥외광고협회 정읍시지부를 통해 신청했다. 그러나 당시 정읍시장은 A씨가 신청한 현수막이 지자체장을 비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게시를 허락하지 않았다. A씨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당시 정읍시장을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당시 정읍시장은 시 현수막 지정 게시대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공시설물임에도 A씨가 신청한 현수막에는 사행성을 조장할 수 있는 화투 그림이 포함돼 있어 옥외광고물법상 관련 규정에 따라 게시를 불허했다고 답했다. 또 해당 현수막이 당시 정읍시장을 탐관오리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 조병갑에 빗대어 묘사하고 '불법 특혜', '직권남용', '부정 채용' 등 표현을 사용해 피진정인인의 사회적 평판과 명예를 현저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어 관련 조례에 따라 게시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인권위는 화투 그림이 청소년 보호법에서 규정한 청소년유해매체물이나 청소년 유해 물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청소년의 보호·선도를 방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정부, 지자체 등 공적 기관의 업무 수행에 관한 사항은 일상적인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하며, 비판 과정에서 공직자의 사회적 평판이 다소 저하될 만한 표현을 사용하더라도 명예훼손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야 할 사유가 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피진정인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부당 채용 등으로 재판 중인 점 등을 고려할 때, 진정인이 게시를 신청한 현수막 내용은 주민이 알아야 할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므로 조례로 금지한 '특정 개인 또는 단체를 비방하는 내용'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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