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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문 때보다 전력 4배 더 드는데…방역수칙과 상충해 단속 애매 [에너지 위기, 전력 다이어트로 넘자]

< 1 > 전력난 부추기는 개문냉방

전력공급예비율 10% 마지노선

지난달에만 세차례 무너졌는데

"손님 끌려면 필수" 문연채 영업

두시간마다 10분 환기 지침 탓

과태료 부과 등 어려워 '딜레마'

여름철 전력 수요가 급증한 가운데 7일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상점이 개문냉방 상태로 영업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ABC마트는 여름철 전력 당국 공공의 적으로 꼽힌다. 문을 활짝 연 채 에어컨을 트는 ‘개문냉방(開問冷房)’ 때문이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시원한 바람에 이끌려 신발들을 구경한 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갑을 열지만 이를 지켜보는 전력 당국의 공직자들은 속이 타들어간다.

올여름도 크게 다르지 않다. 7일 오전 서울 강남역에서는 개문냉방이 여전했다. 이날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은 31도에 달했다. 비가 오락가락해 습도도 높았다. 가만히 서 있어도 등을 따라 땀이 흘렀지만 활짝 열린 문 안으로 한 발짝 들어가자 10분도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옷 안이 뽀송뽀송해졌다.

개문냉방은 ABC마트를 비롯해 핸드폰 판매점, 화장품 판매점, 신발 가게, 오락실까지 업종을 가리지 않았다. 활짝 열린 문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들어오라 손짓하고 있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각종 연료비가 폭등하고 올해 한국전력의 적자가 30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락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 A 씨는 “날씨가 후덥지근한 데다 인근 오락실도 문을 열고 냉방을 하고 있는 만큼 에어컨을 틀 수밖에 없다”며 “특히 우리 가게에서는 농구공 던지기와 같은 활동적인 오락도 진행하고 있어 환기를 위해서라도 문을 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일일 신규 확진자가 10만 명을 넘나들 정도로 다시 유행하는 코로나19도 개문냉방의 이유다. 방역 지침에 따르면 두 시간마다 실내를 10분 이상 환기해야 한다. 밀폐된 지역에서의 에어컨 사용이 코로나19 전파를 부채질한다는 방역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했다. 한 김밥 가게의 종업원 B 씨는 “어디서는 두 시간에 한 번씩 문을 열라고 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문을 닫고 냉방을 하라고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며 “식당인 데다 코로나19에 감염됐을 때 호되게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 문을 열고 환기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역 지침과 개문냉방 자제 방침이 충돌하는 만큼 개문냉방 단속도 지지부진하다. 개문냉방 영업이 상시 단속 대상은 아니지만 산업통상자원부가 제한 고시를 내리면 관련 지방자치단체가 계도와 단속에 나선다. 처음 적발되면 경고 수준의 계도에 그치지만 이후에는 150만∼3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여름철 전력 수요가 급증한 가운데 7일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상점이 개문냉방 상태로 영업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하지만 개문냉방 단속에 나서더라도 ‘방역 지침상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환기’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이 때문에 산업부 역시 코로나19 유행 이후 단속 고시를 지자체에 내리지 않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력 수요가 이번 주에 최대 피크를 찍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부처 내부에서 다양한 절전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며 “방역 지침상 환기를 진행한 것이라고 하면 딱히 단속할 근거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지자체가 사실상의 개문냉방을 하는 사례도 있다. 서울시가 미래형 버스 정류소라며 도입한 10곳의 ‘스마트 셸터’에서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 에어컨을 틀었다. 이 정류소는 당초 버스가 도착할 때만 스크린도어처럼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평소에는 닫혀 있도록 해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의 더위와 추위를 막도록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을 이유로 문을 항상 열어두면서도 에어컨을 계속해서 가동하는 상황이다. 개문냉방 단속에 나서야 하는 지자체가 오히려 개문냉방을 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최근 시민단체인 에너지시민연대가 서울·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진행한 개문냉방 실태 조사에서 전체 460개 상가 중 13%인 59개 상가가 문을 열어뒀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개문냉방 영업 중인 상가 중에서 자동문을 설치하지 않은 경우는 69%에 달했고 자동문을 설치한 상가 가운데 17%가 자동문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개문냉방 영업 중인 매장의 평균 실내 온도는 26.4도로 조사 기간 평균 실외 온도 31.1도와는 4.7도의 차이를 보였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문을 열고 영업했을 때 들어가는 전력량은 문을 닫았을 때보다 네 배 이상 많다. 2014년 한국냉동공조인증센터 연구 결과 냉방 실내 온도를 25도로 설정해두고 문을 닫았을 때는 472.7W, 문을 열었을 때는 2002W의 전력이 쓰였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현실적으로 코로나19와 불경기 때문에 계도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도 “에너지 대란을 넘기기 위해 가벼운 복장 착용, 개문냉방 자제 캠페인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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