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아버지를 대신한 희생양’, ‘우크라이나 비밀요원의 친러 인사 공격’, ‘러시아 지하조직의 반란 행위’, ‘러시아 당국의 가짜 깃발 작전'.
러시아 언론인이자 정치평론가인 다리야 두기나(30)의 죽음을 둘러싸고 나오는 수 많은 가설들이다. 누가, 왜 그를 죽였는지에 따라 우크라이나 전황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어 전 세계가 그의 사망 배후에 주목하고 있다.
22일(현지 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두기나는 지난 20일 아버지 알렉산드르 두긴과 한 행사에 참여한 뒤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이 몰던 차량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 즉사했다. 이 차량이 두긴의 소유인데다 당초 부녀가 함께 돌아올 예정이었다는 점에서 사건 직후 외신들은 두긴을 겨냥한 테러가 빗나가 그의 딸이 사망했다고 추측했다. 두긴은 ‘유라시아리즘’을 창시한 극우 사상가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 대통령의 제국주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 받는 인물이다. 우크라이나 측이 두긴에 앙심을 품고암살을 꾸몄다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수사 결과 두기나가 테러 대상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버지의 사상을 계승한 두기나 역시 최근 국영TV등에 자주 출연해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둔하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용의자로 우크라이나 비밀요원 나탈랴 보우크(43)를 지목했다. FSB는 보우크가 암살 직후 에스토니아로 도주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는 사건 관련성을 강력 부인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실 보좌관은 “우리는 러시아 같은 범죄국가도, 테러국가도 아니다”라며 오히려 러시아가 보복을 핑계로 공격 강도를 높이기 위해 사건을 조작했다는 의심을 제기했다.
한편 이번 사건이 러시아 내분의 조짐이라는 추측도 있다. 러시아 반체제 인사인 일리야 포로마레프는 가디언에 “러시아 반체제 단체인 공화민족군(NRA)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내에서 푸틴 정권을 전복시키고 전쟁을 멈추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러시아 정부 측이 내부의 강경한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대표 보수 인사인 두기나를 제거했다는 추론도 나오고 있다.
정치학자 타티아나 스타노바야는 "대표적 보수 인사가 사망했다는 점에서 과격화된 보수 진영 측은 러시아 정부에 대한 불만을 높이고, 결국 푸틴보다 더 급진적인 리더십을 요구할 것이나 크렘린궁은 이를 충족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심각한 정치적 내홍을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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