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물가 고공행진이 이어지면서 임금 인상 압력도 거세지고 있다. 미국 전체 주의 약 4분의 1이 물가 상승률과 최저임금 인상률을 연계하는 상황에서 높은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자동적으로 최저임금 인상 폭을 키우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개별 기업들의 임금 인상도 이어져 인플레이션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부추기고 있다.
13일(현지 시간) 비즈니스인사이더 등 외신과 미 경제정책연구소(EPI)에 따르면 8월 CPI가 예상을 웃도는 8.3%를 기록하면서 애리조나와 메인·몬태나 등 7개 주의 2023년 최저임금이 자동으로 인상된다. 미국 내 총 12개 주와 특별구인 워싱턴DC는 물가 수준에 연동해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을 자동으로 결정한다. 기준점으로 삼는 물가지수는 CPI나 CPI-U(도시 지역 CPI), 특정 지역 CPI, 개인소비지출(PCE) 등으로 조금씩 다르며 애리조나 등 7개 주의 경우 8월 CPI를 기반으로 이듬해 1월 1일 최저임금이 정해진다. EPI의 데이브 캠퍼 선임정책코디네이터는 “최저임금이 자동으로 연계되는 것은 저임금 노동자들이 인플레이션을 따라잡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8월 CPI가 예상보다 높은 8.3%를 기록하면서 내년 최저임금 인상 폭도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워싱턴과 애리조나·메인 등 3개 주의 내년도 최저시급이 1달러 이상 오르고 사우스다코타와 오하이오·몬태나주의 인상률은 8%를 웃돌 것으로 분석했다. 매년 7월 1일 최저임금 인상을 시행하는 오리건주와 워싱턴DC는 앞서 발표된 물가지수에 맞춰 이미 최저시급을 5.9% 올린 상태다. 이 밖에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주지사는 이달 5일 패스트푸드 업계의 최저시급을 22달러까지 인상할 수 있도록 하는 '패스트푸드 책임 및 표준 회복법(AB 257)'에 서명했으며 네브래스카는 현재 9달러인 최저시급을 2026년까지 15달러로 인상하는 방안에 대한 주민투표를 11월에 실시할 예정이다.
구인난 속에 직원들을 붙들기 위한 개별 기업들의 임금 인상도 계속되고 있다. 카지노 업체 세미놀게이밍은 1억 달러 이상을 투입해 직원 1만여 명의 임금을 대폭 올리기로 했다. 인상 대상은 요리사와 하우스키퍼, 콜센터 및 프런트데스크 직원 등 95개 부문에 종사하는 이들이며 일부 직원들의 임금은 최대 60%까지 인상된다. 세미놀게이밍의 짐 앨런 최고경영자(CEO)는 "수익에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이번 투자가 직원들을 유지하고 이직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날 아마존도 배송이 급증하는 연말을 앞두고 배달 기사들의 임금 인상 등을 위해 4억 50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고물가의 와중에 임금 인상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미네소타에서는 12일부터 사흘간 약 1만 5000명의 간호사들이 급여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일부 병원들은 10~12%의 임금 인상을 제안했지만 간호사들은 30% 이상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미네소타 간호사협회의 메리 터너 회장은 "심각한 인력 부족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서는 임금 인상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철도노조도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17일부터 파업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임금인상발(發)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UC리버사이드경영대학원의 크리스 톤버그 겸임교수는 패스트푸드 매장 직원의 최저임금을 22달러로 인상할 경우 음식 값이 20%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물가가 임금을 끌어올리고 높아진 임금이 다시 물가를 자극하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는 가운데 정작 실질임금은 줄어들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EPI는 "인플레이션이 임금보다 더 빠르게 상승하는 것이 특히 심각한 문제"라며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현상은 물가가 오르지만 근로자들의 임금은 이에 뒤처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질임금 인상은 소비자들의 구매력 약화로 이어져 경기 침체를 일으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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