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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인간이 손 떼자…야생이 돌아왔다

■야생 쪽으로(이저벨라 트리 지음, 글항아리 펴냄)

막대한 비용 들여 일구던 경작지

화학비료·기계화에도 만년적자

'재야생화' 목표로 20년간 실험

멸종위기 희귀 동·식물 되돌아와

예상밖 결과에 대중 뜨거운 반응

농사방식·환경보호 등 질문 던져

‘넵 캐슬’ 농장 해머 연못 인근의 2004년 여름(사진 위)과 2017년 가을(아래) 모습. 농장을 야생화한 이후 관목들이 자라면서 들판의 경계가 모호해졌다./사진제공=글항아리






영국인 이저벨라 트리의 남편 찰리 버렐은 1987년 조부모로부터 영국 동남부에 위치한 농장 ‘넵 캐슬’을 물려받았다. 농장은 만년 적자였다. 버렐 부부는 원인을 조부모의 노쇠와 영농의 기계화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정부 보조금을 받아 낙농장 통폐합, 기반 시설 현대화, 아이스크림·요구르트·양젖 사업 다각화 등 농장 집약화로 돌파구를 모색했다.

다른 대규모 농장처럼 로터베이터(파종·이식에 사용하는 경운기)로 땅을 갈았고 살균 제초제와 인공 비료를 뿌렸다. 들판 한 가운데 있는 나무들은 농기계가 지나가는 길을 방해한다며 뽑아버리지는 않더라도 낮은 나뭇가지들을 잘라냈다. 하지만 이후 15년 동안 흑자를 낸 해는 두 해에 불과했다. 아시아·러시아·호주·북미·남미 등의 저렴한 곡물에 비해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2001년 이들은 자신들의 대농장을 완전히 뒤엎고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야생 상태’로 되돌리기로 결정한다.



최근 번역 출간된 ‘야생 쪽으로’는 작가이자 ‘넵 황무지 프로젝트’ 관리자인 트리가 넵 농장의 재야생화라는 거대한 실험 과정을 담은 논픽션이다. 책은 자연, 야생, 환경보호, 농사 방식, 아름다운 풍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수많은 논쟁적인 질문을 던진다. 2018년 출간 당시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의 ‘올해의 10대 과학서’, 영국 ‘선데이타임스’의 ‘올해의 책’ 등에 선정됐다.

저자는 기계화, 신종 작물 개발, 화학비료와 약제 살포 등을 통해 농업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녹색혁명’의 지속성에 회의적이다. 인류는 이미 필요한 식량을 충분히 확보했다는 것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매년 6억7000만 톤의 식량이 낭비된다. 육류·유제품의 20%, 곡물의 30%, 어류의 35%, 과일·채소의 40~50%는 유통체계의 허점, 보기 싫은 외양, 과소비 등의 이유로 버려진다. 사정이 이런 데도 선진국 정부는 한 치의 땅도 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뿌리고 있는 실정이다. 정작 농민들은 과잉 생산에 농산물 가격이 떨어지면서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 부부가 농장을 영구 목초지로 복원하는 ‘반문명적’인 프로젝트에 돌입했을 때 자존심 강한 영국 농민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땅을 경작하지 않은 상태로 두는 것은 농사를 신처럼 떠받드는 모든 농부의 노력을 모욕하는 처사로 받아들였다. 또 농사도 짓지 않는 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세금 낭비라고 비판했다. 특히 엉겅퀴, 소리쟁이, 금방망이와 같은 잡초가 자라자 동네 주민들은 분노에 휩싸였다. 저자도 주민들의 반발을 이기지 못해 매년 잡초라 불리는 토종 꽃들을 뽑아내느라 매년 큰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



‘넵 캐슬’ 농장에서 서식 중인 다마 사슴./사진제공=글항아리


그렇다면 이들 부부의 실험 이후 20년간 농장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죽어가던 농장에서 쟁기질을 멈추자 야생이 살아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곤충, 나비 떼, 호박벌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사슴들도 돌아다녔다. 8년이 지난 2009년에는 박쥐, 조류 등 시급히 보호해야 할 15종을 포함해 보존 중요성이 있는 60종의 무척추 동물들이 들어왔다. 76종의 새로운 나방도 들어왔다. 쇠백로, 알락해오라기, 검은머리흰죽지, 삑삑도요 등 이따금 찾아오는 동물도 늘어났다. 여기에 부부가 풀어놓은 롱혼 소 53마리, 엑스무어 당나귀 23마리, 다마사슴 42마리가 합류해 생태계에 활기를 더했다.

현재 이 땅에는 멸종 위기에 처한 새들이 대거 서식 중이다. 현재 농장에는 나이팅게일, 뻐꾸기, 점박이딱새, 회색머리지빠뀌와 같은 철새와 숲종다리, 댕기물떼새 등과 같은 텃새들이 목격되거나 번식 중이다. 특히 살아남은 나이팅게일 상당수가 이 땅에 둥지를 틀고 있고 영국 전역에서 5000쌍이 되지 않은 멧비둘기 가운데 수컷 16마리가 발견됐다. 이처럼 농장이 경이로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대중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이자 영국 정부와 환경운동가들의 지원과 조언도 밀려드는 실정이다. 인간이 아닌 자연이 주도권을 쥐는 방식으로 야생을 회복하는 실험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넵 캐슬’ 농장에서 서식 중인 영국 멸종 희귀종 나이팅게일./사진제공=글항아리


이 때문에 저자는 환경단체나 환경 보존 조직의 활동 방향에 비판적이다. 이들은 울창한 삼림이 아름답다는 통념에 매달려 자금 지원을 빌미로 특정 나무만 심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관목은 지구에서 가장 풍요로운 자연 서식지 중 하나이며 가장 자연과 가까운 경관이라는 것이 책이 주장이다. “자연이 아름답고 중요하며 우리가 파괴할 권리가 없기 때문에 자연 그 자체를 위해 자연을 보호하자는 도덕적 주장, 운동가들이 반세기 이상 해왔던 이 주장은 명백히 실패했다.”

다만 이들의 실험은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의문은 하나 든다. 공익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자기 땅을 자연에게 넘길 농민이나 땅 주인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 부부도 프로젝트 실험 과정에서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저자는 “적자 상태이기 때문에 친환경적이 되어야 하거나 친환경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계상태에서 농사를 지으면 빚더미에 올라앉으니 새로운 도약을 시도해보자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재야생화 관광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스코틀랜드는 야생생물 관광만으로 매년 10억 파운드(약 1조6000억원) 이상의 매출과 7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넵 농장 역시 2017년부터 야생생물 사파리, 캠프장 등의 관광 사업을 진행 중이다.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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