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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가 내년에도 오를 것…식량자급률 높이려면 농지부터 보존해야”[청론직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前 한국농업경제학회장)

곡물자급률 20.2%, 日에도 못미쳐 OECD 바닥권

연간 2만㏊ 농지 축소…상속 때도 경자유전 원칙을

수입선 다변화하고 선물거래 도입으로 위험 피해야

비축도 쌀 외엔 태부족, 수요자인 기업 참여 바람직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가 21일 대학 연구실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식량 안보를 튼튼히 하려면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해외 조달 능력을 키우면서 비축을 늘리는 삼박자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국제 식량 가격이 급등했다. 식량이 부족해지면 사람은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 식량 가격 급등세는 전쟁 장기화 속에서 한풀 꺾였지만 언제 다시 고개를 들지 알 수 없다. 한국농업경제학회장을 지낸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21일 “곡물 가격은 내년에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전쟁과 기후변화로 파종을 제때 하지 못해 수확이 적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식량 안보는 보험과 같다”며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보험을 드는 것처럼 식량 위기를 겪지 않으려면 평소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해외 조달 능력을 키우면서 비축을 늘리는 삼박자 대책을 제시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밀을 비롯한 곡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수십 개 국가는 식량 수출을 제한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면 글로벌 식량 위기가 사라질 것으로 보는가.

△식량 위기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부터 언제든 올 수 있고 과거보다 더 자주 올 것으로 예상됐다. 식량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기후변화다. 기후변화는 단기적으로 식량의 생산량도 줄이고 품질도 떨어뜨린다. 지금의 식량 위기는 전 세계적 기후변화에서 비롯됐으며 전쟁은 이를 심화시켰다.

-식량 위기를 불러온 요인으로 기후변화 외에 어떤 것이 있는가.

△무역자유화가 있다. 세계무역기구(WTO)가 만들어진 1995년 전까지는 관세무역일반협정(GATT)하에서 무역이 이뤄졌다. GATT 체제에서 농업 분야는 개방하지 않아도 됐다. 우리나라는 비교 열위에 있는 농업 분야를 개방하지 않고 경쟁력이 있는 공업 분야에서 자유무역으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우루과이라운드(UR) 무역 협상의 타결로 1995년 출범한 WTO 체제로 바뀐 후에는 농업 분야도 완전 개방돼 보호받지 못한 채 경쟁력이 계속 떨어졌다. 언제든지 식량 위기가 올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곡물을 해외에서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다면 식량 위기를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나.

△맞다. 그것이 무역자유화의 이점이다. WTO 체제에서는 식량 생산이 부족한 나라가 식량 생산이 풍부한 나라로부터 자유롭게 곡물을 사들일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그것이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깨졌다.

-이번 전쟁으로 곡물 수출에 문제가 생긴 나라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도였다. 최근의 곡물가 폭등세를 보면 시장이 과잉 반응한 것 같은데.

△물론 투기적 요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곡물은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사람의 생사가 걸린다는 점에서 다른 공산품과 근본적 차이가 있다. 곡물 수출국이 많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곡물 수출국은 미국·캐나다·호주·아르헨티나·브라질·러시아·우크라이나 등 10개국 내외다. 이 가운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수출하지 못했고 나머지 주요 수출 국가도 기후변화로 생산량이 많이 줄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물류에 문제가 생기고 노동력도 부족해져 제대로 수확하지 못했다. 이번에 식량 위기가 불거진 것은 모든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식량 위기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는가.

△농사는 시기가 중요하다. 공장은 좀 쉬다가 다시 돌려도 되지만 농사는 파종 시기를 놓치면 수확하지 못한다. 이번 식량 위기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다. 주요 수출국의 작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곡물 가격은 내년에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

-식량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국내에서 생산한 식량으로 소비를 충당하는 자급자족이 가능해야 할 텐데 우리나라는 어려워 보인다.

△우리나라는 땅은 좁고 인구가 많아 기본적으로 농업 생산 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완전한 자급자족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정부는 그동안 식량자급률을 올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식량자급률이 1970년대만 해도 80% 선이었는데 지금은 48% 정도로 내려왔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농업으로 돈을 벌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농민들은 벼농사 등 식량 작물 위주에서 축산이나 과일처럼 조금이라도 돈이 더 되는 쪽으로 움직였다. 두 번째는 우리가 과거에 비해 많이 먹는다는 점이다. 식량자급률 공식은 전체 식량 생산량 나누기 소비량인데 분모가 워낙 커지다 보니 자급률이 낮아졌다.

-곡물자급률은 훨씬 더 낮지 않은가.

△곡물자급률(사료용 포함)은 2020년 20.2%로 미국(120.1%)은 물론 일본(27.3%)에도 크게 못 미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최근 5년 동안 쌀 자급률은 92~105%대인 반면 밀·콩·옥수수 등 다른 곡물의 자급률은 0.5~9.4% 수준에 불과하다.

-곡물자급률이 너무 낮다. 식량 안보 차원에서 확보해야 할 최소한의 수준이 있지 않나.

△한국과 일본을 제외하고 OECD 회원국의 평균 곡물자급률이 70%를 넘는다. 일반적으로 볼 때 자급률이 최소한 60%는 돼야 한다. 우리가 자급률 60%를 달성하려면 정말 큰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식량 자급이 어려운데 이번 전쟁을 계기로 외국에서 수입해오는 것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식량 안보는 보험과 같다. 식량 안보에 문제가 생기면 사회적으로 엄청난 혼란이 온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험을 드는 심정으로 식량 안보를 챙겨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어렵더라도 식량 자급 능력을 높이는 일이다. 특히 쌀이나 밀·콩 등 기초 식량에 대해서는 자급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려면 기존에 있는 농지라도 제대로 보존해야 한다. 전에는 간척하거나 산을 개간해서 농지를 늘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환경문제가 있어 여의치 않다.

-농지가 얼마나 줄어들고 있나.

△매년 2만 ㏊의 경지 면적이 비농업 용지로 전용되며 감소하고 있다. 농지는 농민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관리를 잘 하다 보니 다른 용도로도 쓰기가 쉽다. 산업 용지나 주택 용지로 바로 탈바꿈할 수 있다. 그런데 비가역성이 있어 다른 용지가 농지로 바뀌지는 않는다. 식량이 모자란다고 건물을 헐고 농사를 짓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농지 보존이 중요한 이유다.

-농지를 보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보다 농지 훼손과 불법 전용을 막아 농지를 보존해야 한다. 스위스의 경우 국가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농지가 엄청 잘 보존돼 있다. 우선 국가 전체 농지총량제를 통해 양적으로 농지를 보존하고 있다. 또 농가에 대한 농업 장려금 지급 전제 조건으로 윤작 의무를 부과해 농지를 질적으로도 보존하고 있다. 특히 상속세 감면 혜택을 줘 농지가 파편화하지 않고 보존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농사를 짓는 자녀에게 농지를 상속하면 상속세를 내지 않는다. 혹시 자녀가 없거나 모든 자녀가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하면 주위 농민이 해당 농지를 살 때 세금 혜택을 준다. 이런 제도 덕분에 스위스의 농가당 평균 농지 규모가 더 커지고 있다.

-곡물 생산 증대를 위해 직불금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돈을 그냥 준다는 뜻의 직불금보다는 보조금이나 장려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 일본의 곡물자급률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은 이유는 장려금에 있다. 일본은 밀을 재배할 때 ㏊당 600만 원가량 주는 반면 우리는 50만 원 지원에 불과하다. 쌀 외에 다른 곡물의 재배를 늘리는 정책도 필요하다. 쌀의 경우 생산은 충분하지만 소비는 점점 줄고 있다. 다른 곡물을 재배해도 쌀 이상의 소득이 나도록 하고 이를 농민들이 제대로 알 수 있게 대책을 촘촘히 디자인해야 한다.

-해외 식량 조달은 적정 가격에 안정적으로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그러려면 수입선을 다변화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미국·캐나다 등 일부 국가에 주로 의존한다. 수입 방식도 다각화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주로 현물거래를 하는데 선진국은 선물거래를 통해 위험을 헤징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에는 이른바 ‘ABCD’라고 불리는 곡물 메이저 기업들이 있다. 이들은 세계 곡물 시장의 80%가량을 장악하고 있다. 우리도 글로벌 곡물 시장에 참여하는 곡물 기업을 키워야 한다. 포스코인터내셔널·하림 같은 기업들이 출현한 것만 해도 다행이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식량 비축도 필요하지 않은가.

△비축은 단기적으로 식량이 부족할 때 필요하다. 우리는 쌀은 충분하지만 나머지 곡물의 비축은 매우 부족하다. 2020년 기준 재고율을 보면 쌀 23.7%, 밀 16.0%, 콩 8.2%, 옥수수 6.7%다. 세계식량기구(FAO)의 권장 재고율은 17~18%다.

-비축을 늘리려면 돈이 많이 들 것 같은데.

△비축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하는데 이곳에 전적으로 맡길 필요는 없다. 비축 곡물의 수요자는 식품 기업이니까 aT와 식품 기업들이 합동으로 하는 것이 좋다.

-농업 관련 예산이 너무 적다는 얘기가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올해 예산은 16조 2856억 원으로 전체 본예산의 2.8%다. 미국의 최근 예산 비중(3~4.8%)과 비교하면 늘릴 필요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의무 지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농업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재해보험만 해도 기후에 따라 보험금이 많이 나가는 해가 있고 남아도는 해가 있다. 미국의 예산 비중이 해마다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의무 지출로 돼 있어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집행되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한다.

◆He is…

1966년 경기 수원에서 태어나 서울대 농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 메릴랜드주립대에서 농업 및 자원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과 경상대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그린바이오과학기술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정부의 농업 분야 정책 평가위원·자문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최근 한국농업경제학회 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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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석 논설위원 논설위원실 hank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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