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측이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 병합을 위해 실시한 주민투표가 예상대로 압도적인 찬성률을 기록했다. 투표를 둘러싼 논란과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투표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상정할 방침이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은 27일(현지시간) 4개 지역 선거관리위원회의 개표 결과 러시아 편입에 찬성한 비율이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99.23%,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 98.42%, 자포리자주 93.11%, 헤르손주 87.05%로 잠정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앞서 러시아 측은 23~27일 5일간 이들 4개 지역에서 러시아 영토 편입 찬반을 묻는 주민 투표를 실시했다. 투표를 치른 지역의 총 면적은 약 9만㎢로,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의 15% 정도이자 한국의 전체 토지 면적(10만 431㎢, 북한 제외)에 육박한다.
투표 결과가 압도적인 찬성으로 기운 데 따라 러시아의 영토 합병 선언은 정해진 수순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텔레그램에 "투표 결과는 명확하다"며 "(이들 지역의) 러시아 편입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당초 러시아 의회가 오는 30일 합병을 승인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러시아 상원의장이 "다음 달 4일 의회가 합병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등 아직 정확한 일정은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러시아가 불법적이고 불투명한 방식으로 투표를 강행했다는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 속에 미국은 투표 절차 및 결과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제출하기로 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27일 오후 뉴욕 유엔본부에서 "가짜 주민투표의 결과가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진다면 닫을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이라며 "만약 러시아가 안보리에서 책임을 회피한다면 유엔 총회가 러시아에 (투표를 규탄하는) 명백한 메시지를 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안보리는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등 5개 상임이사국 중 한 국가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결의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번 투표가 정당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네벤쟈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만약 우크라이나가 자신들의 실수와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우크라이나 내 사람들의 이익을 도외시하면 (병합투표와 같은) 절차는 계속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가까운 중국의 장쥔 대사도 "고립과 제재는 오직 막다른 길로 사태를 몰고 갈 뿐"이라며 서방과 온도차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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