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준금리가 0.25%포인트만 올라도 제조 대기업 절반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좀비기업’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로 자금 사정이 더욱 악화하는 가운데 상당수 기업들이 추가 금리 인상에 따른 유동성 압박에 노출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재계는 정책 당국이 외환시장 변동성을 낮추고 정책금융 지원을 확대하는 등 기업 지원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시장조사 전문 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8∼18일 매출 상위 1000대 제조 기업 재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자금 사정 인식 조사 결과를 3일 발표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응답 기업들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기준금리 임계치는 평균 2.6%로 조사됐다. 임계치가 2.25% 이하인 기업 비율은 37.0%로 집계됐다. 기업 10곳 중 3곳 이상이 현재의 기준금리(2.5%) 아래에서 영업이익으로는 이자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좀비기업이 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3.0%(27.0%) △2.5%(13.0%) △2.75%(9.0%) 등이 뒤를 이었다.
전경련은 한국은행이 12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는 베이비스텝을 밟을 경우 대기업 50%가량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낼 수 없는 취약 기업이 된다고 전망했다.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으로 기준금리가 3.0%가 되면 취약 기업 수는 10곳 중 6곳(59.0%)으로 늘어난다고 추산했다. 기업들은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될 때마다 금융 비용이 평균 2.0% 증가한다고 답했다.
응답 기업들은 기준금리가 연말과 내년에 각각 3.0%, 3.4%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구체적으로 올해 말 예상 금리가 3.0%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본 비율은 67.0%에 달했으며 4.0% 이상이라고 응답한 기업은 없었다. 내년 중 예상 기준금리는 3.0%대(81.0%), 4.0% 이상(10.0%), 2.75%(9.0%)였다. 전경련 관계자는 “계속된 금리 인상으로 금융 비용이 늘면서 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시간이 갈수록 악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기업들의 재무 환경은 더욱 나빠질 것으로 조사됐다. 연말로 갈수록 자금 사정이 호전될 것이라고 응답한 기업 비중은 14.0%에 불과한 반면 악화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38.0%에 달했다. 당장 지금 자금 사정이 전년 동기에 비해 나빠졌다고 응답한 비율(28.0%)보다도 10%포인트 높은 셈이다.
기업들은 자금 사정이 나빠지는 이유로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3고(高)를 지적했다. 구체적으로는 은행 대출금리 인상(39.0%), 회사채 금리 상승(8.0%) 등 금리 영향(47.0%)이 가장 많았다. 원자재 가격 상승(23.0%), 환율 상승(17.0%) 등이 뒤를 이었다.
악화하는 자금 사정에도 응답 기업 37.0%는 올해 말까지 자금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감소 전망(9.0%)의 4배가 넘는 수치다. 자금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문은 원자재 부품 매입이 36.7%로 가장 많았고 이어 설비투자(23.0%), 차입금 상환(15.0%), 인건비·관리비(12.3%) 등 순이었다. 기업들이 고물가·고환율이 당분간 지속된다고 내다보며 원자재와 부품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자금 조달 시 어려움에 대한 질문에서 기업들은 △신규 대출 및 대출 만기 연장(33.3%) △환율 리스크 관리(22.3%) △신용등급 관리(11.0%) 등을 지적했다.
안정적인 자금 관리를 위해 정책 당국에 바라는 과제로는 환율 등 외환시장 변동성 최소화(24.7%)와 경제 주체의 금융 방어력을 고려한 금리 인상(20.7%) 등이 가장 많이 꼽혔다. 소재·부품 수급 안정화(16.3%), 정책금융 지원 확대(12.7%), 장기 자금 조달 지원(7.7%) 등이 뒤를 이었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한미 금리가 역전된 상황에서 추가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기업들의 금융 방어력을 고려한 신중한 금리 인상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어 “외환시장 안정 조치와 정책금융 확대 등으로 금리 인상에 따른 기업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기업 부담에도 한은은 이달 금통위에서 빅스텝에 나설 가능성이 상당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2일 “지난 수개월간 드린 포워드가이던스(사전 예고 지침)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며 “포워드가이던스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최종 금리에 대한 시장 기대가 제롬 파월 의장이 얘기했듯 4% 수준 그 이상으로 상당 폭 높아진 것이다. 우리(한은)는 4%에서 안정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기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밝혔다.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에 발맞춰 한은도 금리 인상 폭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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