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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과 언제든 전화"…스위스, 명확한 규제에 블록체인 산업도 '날개'

[블록체인, 보이지 않는 고릴라를 찾아라]

■ '블록체인 강국' 스위스 원동력은

'하면 안되는 것' 분명히 밝혀

규제가 되레 사업 확실성 높여

암호화폐공개 등 제도화 앞장

각국 기업 몰리며 '성지' 우뚝





스위스에서 금·은화 기반 토큰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블록체인 기업 SKBA는 최근 스위스 금융시장감독청(FINMA·핀마)으로부터 비조치의견서(No-action letter)를 발급 받았다. 비조치의견서는 건전성 검증을 마친 프로젝트에 대해 당국에서 더 이상 규제하지 않겠다는 보증수표로 통한다. 이용한 SKBA 대표는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돼 프로젝트 추진에 탄력이 붙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스위스에서 블록체인 산업이 빠르고 안정적으로 정착한 배경에는 명확하고 유연한 규제가 주효했다. 스위스에서 만난 기업인들조차 ‘이곳만큼 블록체인 사업을 하기 좋은 나라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얀 브르체크 크립토파이낸스 대표는 “핀마는 언제든지 전화로 소통할 수 있을 만큼 열려 있고 유연하다”며 “규제가 오히려 사업의 확실성과 신뢰를 제공해준다”고 말했다. 규제가 정립되지 않아 불안 속에 소극적으로 사업을 펼치는 것보다 ‘하면 안 되는 것’을 분명히 밝혀 사업에 더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스위스 법 특유의 원칙 중심 규제도 새로운 산업 부흥에 유리한 것으로 분석된다. 루치우스 마이저 비트코인스위스 의장은 “스위스 법이 지나치게 지엽적이지 않기 때문에 암호화폐 분야에도 기존 법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었다”며 “같은 법안도 유럽연합(EU)에서는 100쪽 분량이라면 스위스는 15쪽 안에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법이 지나치게 세세하면 자유도가 떨어져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스위스가 암호화폐공개(ICO)를 제도화한 과정 역시 낡은 규제가 신산업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엿보인다. 우리나라 금융위원회에 해당하는 핀마는 2017년 9월 ICO 지침을 발표하고 이듬해인 2018년 2월 전 세계 최초로 ICO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지난해 8월에는 세계 최초로 블록체인법을 제정했다. 스위스가 블록체인 제도를 갈고 닦아온 과정은 주변 EU보다 3년가량 앞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의 빠른 대응에 스위스는 전 세계 기업들로부터 ‘ICO 성지’로 불리면서 에이치닥과 보스코인 같은 한국 기업까지 스위스로 건너가 코인을 발행했다.

물론 ICO를 일찍 허용한 스위스도 코인 투기 열풍 같은 부작용을 겪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품이 해소되고 시장의 관심도 코인에서 블록체인 기술 본연에 집중하는 프로젝트로 옮겨갔다. 스위스 국립은행 고문을 거쳐 현재는 취리히의 블록체인 전문 로펌 ‘위키파트너스’에 합류한 한스 쿤 변호사는 “스위스에서 아이디어와 백서 몇 장 만으로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들에게 큰 돈을 모으는 ICO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시장 전반이 한 단계 성숙해지면서 블록체인 산업을 단순한 투기 대상이 아닌 새로운 기술로 바라본다는 게 쿤 변호사의 분석이다.

스위스가 이미 ICO 단계를 넘어 다음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ICO 허용을 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간 우리 정부는 투기를 막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ICO를 금지했다. 그러나 테라·루나 사태처럼 해외에서 ICO를 마친 코인에 대한 내국인들의 거래를 사실상 막지 못하며 실효성 논란이 불거졌고 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특임교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가상자산 행정 명령을 통해 각 부처에 산업 발전 방향을 제시했듯 한국도 블록체인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마스터 플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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