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 폭이 두 달 연속 둔화하며 물가 정점이 지났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하지만 외식 물가가 30년 2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는 등 현장이 꺾인 물가 상승세를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1500원을 넘보는 원달러 환율에 다음 달 전기·도시가스 요금 인상까지 겹쳐 다시 물가 상승 폭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5일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9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5.6% 상승했다. 지난 7월 6.3%까지 오른 뒤 두 달 연속 5%대를 기록한 것이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심의관은 “석유류 가격의 오름세가 둔화한 영향”이라며 “물가 정점이 지났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8월 배럴당 97달러대까지 오른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9월 70달러대까지 내려온 바 있다.
하지만 둔화한 물가 상승 폭을 현장에서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외식 가격과 항공료·학원비·보험료 등을 포함한 개인서비스 가격은 전년 동월보다 6.4% 올라 1998년 4월(6.6%)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외식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9.0% 치솟아 1992년 7월(9.0%) 이후 사상 첫 9%대를 기록했다. 정부 관계자는 “모임 등 외식 수요가 커지는 연말까지 계속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장철을 앞두고 채소류 가격까지 높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9월 채소류 가격은 전년 동월보다 22.1% 올랐다. 대표적인 김장 채소인 배추와 무 가격이 각각 전년 동월 대비 95.0%, 91.0% 폭등했다. 주요 양념 채소인 고추는 47.3%, 마늘은 6.9% 올랐다. 어 심의관은 “배추의 경우 잦은 강우와 일조량 감소로 병해 피해와 생육 부진의 영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주요 김장 재료인 배추와 무·고춧가루·마늘 등에 대한 수급 안정 대책을 10월 말에 발표하겠다”며 “소비자들의 김장철 장바구니 부담이 증가하지 않도록 부담 완화 대책을 적극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여전히 ‘물가 10월 정점론’을 주장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전반적인 물가 수준이 높지만 늦어도 10월에는 정점이 되거나, 소망컨대 정점이 지났기를 희망한다”며 “물가 수준이 높지만 조금씩 내려가지 않을까 전망한다”고 말했다.
다만 앞으로 물가 상승 폭이 다시 커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최근 1430원대까지 오른 원달러 환율이 수입 물가를 밀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각종 가공식품의 경우 제조원가에서 원재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4.8%인데, 원재료가 대부분 밀과 대두·옥수수·원당 등 수입산이다. 이미 전년 대비 8.7% 오른 가공식품 가격이 추가로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10월부터 인상되는 전기 및 도시가스 요금도 물가 상방 압력이다. 앞서 정부는 10월 공공요금 인상에 따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비 0.3%포인트 추가로 오를 수 있다고 내다본 바 있다.
물가 상승 폭 둔화에 주요했던 국제 유가도 다시 꿈틀거릴 수 있다. 경기 침체 우려에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플러스)가 5일 오후(중부 유럽시간 기준) 회의를 열어 하루 100만 배럴 이상 원유 감산을 발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공급량의 1%에 해당하는 대규모 감산이다. 어 심의관은 “OPEC+의 감산 논의가 있어 향후 물가 흐름은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환율 상승이 만만치 않고, 전기요금, 도시가스요금이 오를 예정이라 오름세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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