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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이재명표 ‘억강부약’은 부적절…대기업 많을수록 좋은 경제”

◆진보진영 경제관 비판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운동권·로빈후드 세계관 갇혀 경제 원리·세계 변화 둔감

文정부 소득주도성장, 고용·분배 악화 ‘나쁜 불평등’ 초래

진보진영, 노선 혁신하려면 수출 대기업 공로 인정해야

기초연금 하층 두껍게, 취약층 자녀엔 영어학원비 지원을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이 12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대기업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낳았다는 진보 진영의 오랜 통념은 틀렸다”며 “진보 진영이 혁신하려면 글로벌 환경 변화에 뒤처지지 않도록 치열하게 노력한 대기업의 공로부터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작품이 아닙니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진보 진영 전체가 줄기차게 요구한 정책을 문재인 정부가 수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소주성 실패는 25년 진보 경제학의 실패나 다름없습니다.”

한 달 전 진보 진영의 경제정책을 내부에서 비판한 저서 ‘좋은 불평등’을 쓴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이 밝힌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다. 그는 올해 초까지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진보 정책통으로 민주당 내부에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최 소장은 12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소주성은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인데도 ‘나쁜 불평등’을 초래했다”며 “불평등의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대기업과 신자유주의, 비정규직 양산 등 3대 불평등 적폐론에 매달린 진보 진영의 잘못된 통념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책 제목인 ‘좋은 불평등’이라는 용어부터 낯설다.

△경제학에서 불평등은 격차 그 자체다. 불평등은 중립적 개념인데도 실제로는 윤리적 개념이 작동한다. 불평등은 좋은 영향으로, 혹은 나쁜 영향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들 결과만 주목한다. 노무현 정부는 불평등 심화로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그때의 불평등 확대는 대(對)중국 수출 대박으로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발생했다. 이는 좋은 불평등이다. 반대로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불평등이 완화됐지만 실은 글로벌 금융 위기와 중국의 ‘신창타이(新常態·뉴노멀)’ 등 교역 환경이 악화하면서 나쁜 형태로 불평등이 완화한 것이다.

-‘좋은 불평등’이 ‘나쁜 평등’보다 낫다는 말인데.

△당연하다. 고용과 소득이 작살나는 평등이 좋은 것인가. 진보 진영 내부에서는 불평등의 원인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 있다. 대기업과 신자유주의, 비규정직 양산 등을 3대 적폐로 본다. 하지만 틀렸다. 불평등은 3대 적폐라는 내부 요인이 아니라 중국의 개방 같은 외부 요인으로 발생했다. 수출의 낙수 효과가 없다는 주장도 거짓말이다. 원인 규명이 틀렸으니 처방도 틀렸고 정책마다 실패하는 것이다. 정작 진보 진영은 우리 사회의 취약층·하층이 누구인지 진지한 논쟁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비정규직 저임금 근로자보다 더 하층은 일자리가 없는 빈곤 노인이다.

-진보 진영은 최하층 노인의 빈곤 문제에 왜 소홀했는가.

△우리나라의 진보는 50대 이하, 고학력층이 많다. 진보 정당에는 노인이 표가 안 되니까, 노조에는 노인이 조합원이 아니어서 관심 밖이었다.

낙수 효과 없다는 진보의 주장은 ‘거짓말’


2018년 9월 개최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제1차 전체 회의. 홍장표(왼쪽부터) 위원장, 김동연 경제부총리,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정해구 정책기획위원장./연합뉴스


-소주성을 포함해 진보 진영의 경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혹시 ‘문파(문재인 정권의 핵심 지지층)’들이 좌표를 찍고 공격하지 않았는가.

△한 민주당 출신 인사는 문자 폭탄을 10만 통쯤 받았다고 한다. 나도 그 정도 받아보는 게 꿈이다(웃음). 그런데 그들이 뉴미디어에는 능숙하지만 책을 잘 보지 않아서 그런지 별 반응이 없다.

-진보 진영 경제정책의 문제는 무엇인가.

△경제 원리에 둔감하고 경제 문제에 규범적·윤리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다. 시간당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급격히 올렸더니 어떻게 됐는가. 일자리가 급감해 소득 격차가 더 벌어졌다. 불평등 완화를 내건 소주성은 고용과 소득이 작살나는 ‘나쁜 불평등’을 초래했다. 부동산 정책 실패도 그 연장선에 있다. 경제는 투자와 혁신, 불확실성, 이윤 추구 같은 작동 원리가 있는데도 이를 무시했다. 1980년대 운동권의 시각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로빈후드식’ 세계관도 그때 그대로 멈춰서 있고 업데이트가 안 돼 있다.

-왜 이념적 도그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유산이 아닐까 싶다. 선거에서 ‘세대 효과’라는 개념이 있다. 20대에 가수 남진을 좋아했다면 50대·60대에도 그대로 좋아한다. 정치권 86세대와 경제권 86세대의 차이는 크다. 경제권 86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공부하고 책을 사 본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된다. 그런데 정치권 86은 둔감하다. 공부하지 않아도, 유능하지 않아도 된다. 정무적 이슈로 죽일 듯 싸우기만 해도 의원 배지를 달 수 있다. 때로는 감나무 밑에서 상대방의 실수를 바라며 입만 벌리고 있다.

-책의 전반적 요지는 대기업을 적대시하는 진보 진영의 인식을 바꾸자는 것 같다.

△진보 진영은 ‘대기업=부자=적폐’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반(反)기업 진보가 아닌 친(親)기업 진보를 해야 한다. 경제성장 초기의 공신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경제 관료들이다. 1990년대부터는 수출 대기업의 공로도 크다. 대기업들이 국제 환경 변화에 맞춰 고군분투한 결과 선진국에 진입했다. 그 공을 인정하는 것이 진보 진영이 경제 노선을 혁신하는 출발점이다.

TSMC 있는 대만과 없는 대만은 천양지차


2021년 7월 1일 대선 출사표를 던진 이재명 경기지사의 핵심 메시지는 ‘억강부약’이었다. 출마 선언 당일 고향인 경북 안동을 방문한 모습. /연합뉴스


-대기업 주도 성장이 양극화를 부추겼다는 비판도 있다.

△격차를 줄여야 하고 동반 성장도 필요하겠지만 굳이 비판받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대기업과 글로벌 단위의 초대기업이 많을수록 좋은 경제다.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는 글로벌 경쟁 시대에 뒤처진다. 중소기업 위주의 국가치고 잘된 곳이 없다.

-대만 경제는 중소기업 중심인데.

△대만 모델은 1970년대 이후 진보 진영이 주목했지만 정작 대만은 대기업 위주인 우리나라를 부러워한다. 그나마 세계 1위 반도체 파운드리 회사인 TSMC로 한숨 돌리게 됐다. TSMC가 있는 대만과 없는 대만은 천양지차다.

-그래서 ‘규모의 경제’를 강조한 것인가.

△진보 진영의 반(反)대기업 정서는 박정희 정부 때 대기업 중심 경제에 대한 안티테제다. 그 결과 진보는 1987년 체제 이후 소상공인 보호라는 미명 아래 ‘규모의 비경제’를 장려했다. 저임금 근로자 양산은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 아니라 규모의 비경제를 장려한 데 따른 결과물이다. 작은 기업이 큰 기업으로, 대기업이 글로벌 초대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바람직하다. 그게 경제정책의 유능함이다.

-한데 이재명 대표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을 제시했다.

△억강부양을 하자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괴롭혀야 한다는 논리가 아닌가. 사회·복지정책에서는 그나마 억강부약이 통하겠지만 경제정책으로는 부적절하다. 정의당은 대기업 임원의 연봉을 제한하는 ‘최고임금법(일명 살찐고양이법)’ 제정안을 발의한 적이 있다. 이는 삼성전자 몰락 촉진법으로 경쟁국인 중국이 제일 좋아할 것이다. 진보 진영은 ‘로빈후드식’ 경제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억강부약은 이 대표가 지난해 대선 출마 때 한 말이다. 표가 되고 중도층을 흡수할 수 있다고 본 것인데 착각이다. 그래서 대선에서 졌지 않았나. 억강부약이 아닌 부강부약이 맞다.

-민주당이 경제정책에서 유능한 정당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운동가 출신 국회의원보다 경제 전문가 출신 의원이 더 많아야 한다. 기업인과 경제 관료 등을 대규모로 수혈해야 한다. 이를테면 호불호를 떠나 삼성전자 출신의 양향자 의원(민주당 탈당 후 무소속) 같은 인물이 적격이다.

책임 안 지고 해법 나 몰라 ‘나그네 진보’


20대 대선 정국이 한창이던 지난해 7월 노년단체 회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초연금을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지급하라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바람직한 진보 경제 모델을 해외에서 찾는다면.

△스웨덴 사회민주당이다. 복지천국만 연상하면 반쪽만 보는 것이다. 사민당은 투자 촉진형 복지국가를 만들었다. 기업이 투자할 여건을 마련하고 한계 기업 퇴출과 산업구조 고도화를 추진했다. 그렇게 모은 재원으로 복지에 투자했다. 사민당 정부가 복지국가 모델을 완성한 데는 경제정책의 유능함이 결정적이었다. 반 세기 전에 만든 복지 체계도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개혁했다. 기초연금도 선별 지급한다. 우리나라 진보는 책임지지 않는 ‘나그네 진보’다. 문제만 제기할 뿐 주인 의식을 갖고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기초연금 지급액 인상과 지급 대상 확대를 놓고 논란이 있는데.

△처지가 괜찮은 노인에게도 세금을 지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지급 대상이 소득 하위 70%기준일 경우 소득(1인 가구) 기준이 2008년 40만 원 이하에서 올해 180만 원 이하로 4.5배 올랐다. 현 수준에서 지급 대상 소득 기준을 동결하고 매년 물가 상승분만큼 올리는 정액제로 가야 한다. 이렇게 되면 지급 대상이 점차 줄어 남는 재원을 취약층에 집중 지원할 수 있다. 민주당은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주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는데 얼핏 보기에는 정치적으로 이익이 되겠지만 결코 지혜로운 접근이 아니다. 노인 부양비가 늘어나면 재정 부담이 커지고 이게 미래 세대의 세금으로 전가된다.

-국민연금 개혁을 앞두고 있다. 민주당이 동의해야 개혁 추진이 가능하다.

△미래 세대가 덤터기를 쓰는 구조는 안 된다. 연금 보험료율을 단 몇 %포인트 올리자는 데도 벌벌 떨면서 후대에 그 부담을 떠넘기는 것은 못할 짓이다. 세대 간 부담의 형평성 제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하층 노인의 빈곤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초연금 재설계와 국민연금 개혁을 연계해야 한다. 지지층인 노동계가 반대한다고 해서 알량한 정치공학으로 개혁을 회피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개혁을 외면하는 것은 현재의 유권자 표만 볼 뿐 미래는 바라보지 않겠다는 말이다.

-계층 이동 사다리가 끊기다시피 했다.

△핵심은 교육이다. 취약 계층 자녀가 글로벌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영어와 코딩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공교육에서 두 가지 수요를 채워주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면 방과후 학습을 하든지, 그것도 안 된다면 학원 교습권을 줘야 한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



◆He is…

1973년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나 고교 졸업 후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발기인으로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오랫동안 진보 정당에서 활동하다가 2012년 현 더불어민주당인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민병두 의원 보좌관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지막 정책보좌관 등을 맡았다. 여론조사기관인 한국사회연구소(KSOI) 부소장과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냈다. 현재 개인 연구소인 신성장경제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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