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달러화 가치가 크게 오르면서 해외 기업 인수를 위한 크로스보더 딜(Cross Boader Deal·국경 간 거래) 시장에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원화로 환산한 인수 대금 규모가 커지자 국내 기업과 기관 투자가들의 해외 투자 환경이 급격히 악화된 셈이다. 최근 금리 상승으로 국내 M&A(인수·합병) 거래가 급감한 상황에서 킹달러는 해외 M&A를 한층 위축시키고 있다.
1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D바이오센서와 SJL파트너스는 미국 의료장비 업체 메리디안(Meridian Bioscience, Inc.) 인수를 위한 재무 전략을 재정비하고 있다. 두 회사는 지난 7월 메리디안 지분 100%를 15억3199만 달러에 인수하기로 계약하고 연말까지 자금 납입을 마치기로 했다.
에스디바이오센서(137310)와 SJL파트너스는 각각 6억 달러와 4억 달러를 마련해 지분 투자를 단행하고 나머지 약 5억 달러는 국내·외 은행을 통해 인수 금융을 써 충당하기로 구조화 했다. 그러나 원·달러 환율이 17일 장중 1440원을 재돌파하며 치솟아 메리디안 인수를 결정할 당시 환율(1307원)보다 10% 이상 상승했다. 이는 원화로 환산한 대금을 인수측이 2000억 원 이상 더 확보해야 함을 뜻한다.
SJL파트너스는 이 때문에 달러를 보유한 국내 기관들을 대상으로 자금 조달(펀딩)을 집중하고 있다. 해외 투자 경험이 많고 외화 여력까지 있는 연기금과 국내 은행이 대상이다. SD바이오센서도 보유 중인 달러화 예금 등을 활용해 인수 대금을 마련하는 등 원화 가치 하락 여파를 최소화하려 하지만 여의치 만은 않은 상황이다.
주식 담보 대출 등 인수 금융을 고심해 온 SJL파트너스는 주로 해외 은행을 상대로 대출 가능 여부를 타진하고 있다. 금리가 급속도로 오르자 지분 투자 규모를 늘리는 한편 대출을 최소화할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IFUS) 승인마저 다소 지연되고 있어 메리디안 인수는 당초 예상보다 한 달 이상 더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M&A 시장에서는 국내 사모펀드(PEF)나 자산운용사들의 해외 기업 및 부동산 인수 시도가 대부분 멈춰선 상황이다. 실제 올 하반기 들어 대규모 해외 투자 결정은 SK(034730)그룹의 미국 테라파워(Terrapower) 지분 인수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SK㈜와 SK이노베이션은 지난 8월 테라파워에 7억5000만 달러의 투자를 결정하고 내년 중 납입을 마칠 계획이다.
외환 당국이 달러 유출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점도 해외 M&A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005930)가 대규모 해외 M&A를 검토하고 있지만, 외환당국이 고환율 여건에서 해외 빅딜이 적절하냐는 우려를 제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167억 7000만 달러로 한 달전 보다 196억 6000만 달러나 감소했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환율 여파와 금리 급등, 경기 침체 신호 등으로 국내 기관들의 해외 투자가 올스톱 됐다"면서 “일부 대기업 정도만 딜을 검토하는 수준인데 이마저도 외화 유출을 우려한 당국이 제동을 걸 수 있어 예의주시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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